'한반도재단'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08.08.04 <49> 가슴 답답한 편지
  2. 2008.08.04 <48> 관악산 등반기
  3. 2008.08.04 <47> 다시, '희망'에 대하여 ―
  4. 2008.08.04 <46> 출산파업
  5. 2008.08.04 <45> 농장에서 식탁까지
일요일 오후,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는 박승일 씨를 만났습니다. 루게릭병은 의식은 뚜렷한 상태에서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는 병입니다.

덜컥 만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걱정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습니다. 침울한 분위기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승일 씨도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저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농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밝은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슨 농담을 할지 또 막막합니다.

그러나 승일 씨를 만나면서 고민은 쉽게 풀렸습니다. 제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잘 생기셨습니다’ 혹은 ‘미인이십니다’ 그런 인사를 가끔 하는 편인데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남이라고 느꼈습니다. ‘옛날에 농구할 때 오빠부대가 많았겠다’고 인사 했습니다.(승일 씨는 유명한 농구선수 출신입니다) 얼굴에 얼핏 미소가 비치더군요.

승일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굴 표정에서는 반가운 감정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희미하게나마 마음을 얼굴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승일 씨와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카메라 후레쉬며 또 함께 여러 사람이 같이 갔기 때문에 승일 씨의 맥박이 다소 빨라져서 서둘러 자리를 나왔습니다. 잠시 후 조용히 승일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승일 씨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에 ‘후보 꼭!!!’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눈동자를 움직여 어렵게 쓴 글이었습니다. 멍~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담’ 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어머니 손복순 씨를 만났습니다. 승일 씨 같은 루게릭 환자들은 음식비 부담이 크다는 말씀도 했습니다. 음식물이 다 수입품인데 가격이 비싸 건강보험 적용만 받아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루게릭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가 꼭 필요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다른 루게릭 환자들도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안구 마우스 프로그램을 지원해 달라고 승일씨가 컴퓨터로 찍기도 들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가위 눌린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부담을 개인이 다 짊어져야 하는 지금의 건강보험체계는 말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박하게 호소하는 이분들을 마주 보면서도 선뜻 ‘그러겠노라’고 확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한 건강보험의 현실을 잘 알면서 그 자리에서 덜컥 약속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식대를 보험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루게릭 환자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건지, 요양소를 건립할 경우 건축비며 운영비를 어떻게 조달할지, 당장 정부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수많은 중증․희귀난치병 환자와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빈층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어머니의 절절한 눈빛을 마주하고, 가슴 속으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흔쾌히 약속 할 수 없는 것이 비참하고 참담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따로 노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뒤엉킨 필름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혼란스러웠습니다.

결국,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어떤 것도 속시원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승일 씨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승일 씨 스스로 얘기한 것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세상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고 ‘희망의 날’이 올 때까지 세상을 향해 ‘나 여기 살아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루게릭 환자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돼줘야 한다고도 요청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많이 고민하고 궁리해 봐도 여전히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꼬박 하루가 더 지나고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제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2005.11.22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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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토요일에 관악산을 올랐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입니다. 정부 일을 시작하고는 휴일에도 거의 개인 일정을 잡지 못했습니다. 행사며, 회의를 쫓아 다니다 보면 손가락 사이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주말과 휴일이 스멀스멀 지나가곤 합니다.

제 사무실이 있는 곳이 바로 관악산 자락입니다.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관악산은 장관입니다. 하루하루 새 옷을 갈아입는 산의 현란한 ‘패션쇼’를 지켜보며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산에 한번 오를 여유가 생길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다가 만사 제쳐놓고 등산화를 챙겼습니다. 더 늦으면 이대로 훌쩍 가을산을 떠나보낼 것 같아서요.

가까이서 본 관악산은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바스락 바스락’ 잎사귀 소리가 정겨운 하모니로 귀를 간지럽히고, 약간 덜 탈색된 단풍잎은 ‘언제 선홍빛이었냐’는 듯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모처럼 하는 등산이라 그런지 정상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더군요. 북한산에만 있는 줄 알았던 ‘깔딱고개’가 관악산에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깔딱고개’는 어디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상을 눈앞에 두면 반드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깔딱고개’를 만나게 되는 건 아닌지요? 어쩌면 우리 사회도 새로운 질서를 찾아 ‘깔딱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갈등이 있고, 심지어 혼선도 있지만 마치 정상을 눈앞에 두고 ‘깔딱고개’를 오르는 것처럼 분명히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을 것이 확실한 내일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해맑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마치 오랜 지기처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어, 김근태 장관이네!’하며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요즘 김치파동이다 뭐다 해서 등산을 하면 따가운 시선 좀 받을 거라고 각오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봐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관악산이 베풀어주는 넉넉함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상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려갈 일이 아득합니다. ‘저 길을 언제 또 내려가나?’ 걱정이 됩니다. 눈으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보니 산자락에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 모교이긴 하지만 산 중턱까지 건물이 들어서고 산과 ‘높이대결’이라도 할 듯이 솟아오른 모양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더군요. 이웃이나 자연과 잘 어울리는 넉넉하고 겸손한 서울대학교가 됐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숨 헐떡이며 산을 오르는 분들을 만나니 또 기분이 묘합니다. ‘어휴, 저 길을 언제 다 오르려나’ 걱정이 되면서도, 솔직히 나는 이제 쉬운 길만 남았다는 사실에 약간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산을 내려와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며 근 2년 만에 맞는 여유를 만끽합니다. 한잔하는 틈을 타 방금 다녀온 관악산을 다시 올려다 봅니다. 그렇게 바라본 관악산은 또 그 나름대로 아름답습니다. 가까이에서 만나면 가까운대로, 멀리서 바라보면 또 먼 그대로…. 산은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삼 많은 것을 받고 산다는 사실을 다시 느낀 주말이었습니다.

2005.11.14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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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다시, ‘희망’에 대하여 ―

경남 사천을 다녀왔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놓인 분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자활사업’을 하는데, 그날 경남에서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 모두 모여 모처럼 허리띠 풀고 ‘한판 논다’는 연락을 받고 길을 나섰습니다. 마음으로 응원도 하고 박수도 치고 싶었습니다.

행사장인 ‘사천공설운동장’에 들어서니 맨 먼저 아주머니 그리고 아저씨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난히 반갑게 악수하고 좋아하시더군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일상에 지치고, 삶에 지친 그분들이 정부에, 이 나라에 기대하고 희망하는 바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많은 말씀을 나누지 않아도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을 맞잡으니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제 가슴 속으로 전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축사를 했습니다. 딱딱하지 않고 편하게 말씀드릴 작정으로 우스개 소리도 좀 섞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짜~안’ 했습니다. 운동장에 앉아있는 분들이 왜 한결같이 그리도 왜소해 보이는지요? 몸집도 유난히 작아 보이고,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요즘 자활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마음고생을 좀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크지 않으니 이래저래 눈치 볼 일도 많습니다. 예산집행 실적에 비해 자활성과가 미진하다는 ‘눈총’도 받고, 그 바람에 정부 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자활예산을 깎겠다는 방침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없었던 일로 되돌릴 생각이고, 거의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나 자활사업을 돕는 분들이 적잖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자활은 복지부의 여러 사업 가운데서도 가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오죽하면 복지부 직원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일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을 맡으면 개인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우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자활사업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우리 사회의 부담이 되기보다 스스로 다시 일어서겠다고 생각하는 이분들이 있는 한 이미 문제를 절반은 해결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기죽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두번, 세번 주눅 들지 마시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축사를 마쳤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

장터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행사장 한켠에 잔치판이 열렸습니다. 서툰 솜씨로 떡매를 치고, 또 떡도 만들었습니다. 아이처럼 솜사탕도 사먹으면서 여기저기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쏘다니다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자활사업을 돕는 분들 가운데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과 고민을 한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번 예산 삭감 방침에 항의하는 분들을 만났는데 옛날에 탄압에 맞서 일하던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십년만에 만났는데 당장 큰 성과가 나지 않는 사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괜히 주눅 들어서 힘겹게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 당장은 고달프고, 주눅 들고 왜소해 보이지만 이런 몸부림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쓰러지지 않는 팽이처럼 돌아가는 셈이니까요.

그 희망을 하늘만큼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 훌쩍 타넘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05.11.08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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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놔도 가임여성의 출산파업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며칠 전, 한 방송프로그램 저출산 토론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유기고가인 그 여성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그런 말을 주고받는다고 소개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출산을 고민하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정부적으로 저출산 대책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말씀을 들으니 약간 힘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출연한 생방송 토론이라 처음엔 좀 어벙벙했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정말 피부에 와닿는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정책수립과정과는 좀 다른 복잡하고 종합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합니다. 문제 자체가 상당히 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고차방정식풀기라고 할까요?

과거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던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저출산 문제가 단지 사교육비나 보육시설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런 경제적인 이유 못지않게 여성 스스로 자기실현을 하겠다는 욕구가 크게 높아진 것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IMF 이후 부쩍 심화된 ‘과로형 직장환경’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대전환을 해야 합니다. 제도와 정책은 물론, 사회적인 인식과 문화의 변화도 함께 이뤄야 합니다.

출산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출산을 축복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말뿐인 축복’이 되지 않도록 실제로 경제적․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데까지 밀고 나가야 합니다.

방향은 그렇게 잡고 있는데 실제로 정책으로 구체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역시 예산 문제입니다. 출산과 보육, 육아에 대한 비용의 상당부분을 정부가 부담하고, 모성보호에 앞장서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엄청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놓고 지금 정부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많은 토론을 하고 있고 머지않아 결론을 낼 생각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역시 부처 간의 ‘공조’입니다. 지금은 보건복지부에서 저출산 대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 문제는 복지부의 정책 범위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재경부, 산자부, 노동부, 교육부, 여성부, 문광부 등 수많은 부처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출산고령화대책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에서 관장하기로 했습니다. 민간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위원과 민간 위원이 절반씩 참여하고 있습니다. 실무부서인 추진본부는 보건복지부와 여성부, 노동부, 산자부 등 여러 부처의 공무원들이 함께 팀을 이뤄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대책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직 아장아장 걷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두 발로 땅을 딛고 곧추 설만큼 충분한 힘도 없습니다. 반면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는 너무나 많고 어렵습니다.

저는 ‘출산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핵심성공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고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여성들 스스로 출산파업을 풀고 출산을 진정한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그날까지 어렵고 힘들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2005.10.31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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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납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수준으로 만족할 상황이 아닌데도 성급하게 ‘안전하다’고 말한 점은 국민의 기대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식품관리 정책’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절대적인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에 맞출 수 있습니다. 핵심은 생산자 중심의 식품관리 정책을 소비자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는 것입니다. 식품에 대한 정책 패러다임(판단 기준)을 ‘증산’에서 ‘안전’으로 바꿔야 합니다. 

안전을 관리하는 기관인 식약청이나 또는 어떤 기관이 ‘농장에서 식탁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감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생산을 지원하는 기관이 덤으로 안전관리까지 담당하는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식품과 관련된 부처가 7~8개가 됩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중금속, 농약, 동물 항생제 등 위해요소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일관된 관리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고 정부 안에서 의견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를 건설 기획 단계부터 시작하듯이 소비자 안전평가를 생산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제도와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걱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농민과 어민의 부담이 커질 것입니다.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농사짓고 양식하는 일이 더 까다로워 질 것입니다. 애써 지은 농수산물을 폐기하는 일도 많아질 것입니다. 위생시설이나 냉장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입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통관과정에서 안전성을 확인했지만, 앞으로는 외국에서 생산하는 단계부터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합니다. 수입업자가 안전을 확인할 책임을 지고,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을 하는 체제로 시급히 바꿔야 합니다. 생산자는 물론이고 유통 상인, 수입업자가 안전성을 동시에 책임지도록 준엄하게 해야 합니다. 식품의 안전성을 책임지지 않으면 엄중한 처벌을 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데 규제를 강화하면 어쩌란 말이냐?’는 원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생산원가가 올라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통상마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부담이 있지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식품안전’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고 결국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농어민의 부담은 국가와 사회가 나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만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나라는 이미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전에 ‘식품파동’을 겪었고,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소비자 중심의 식품관리 패러다임’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미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지목했습니다. 신뢰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고, 신뢰가 구축된 나라만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식품에 대한 ‘신뢰’는 원초적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왕에 불거진 ‘식품안전문제’에 대해 한발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2005.10.24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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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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