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에 편지를 씁니다. 내일부터 해외출장을 떠날 계획이라 서둘러 편지를 씁니다. 결국, ‘토요일에 쓰는 편지’가 됐네요.

지난 목요일에는 나이팅게일 탄신일을 맞아 ‘간호사 한마음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5,200명의 간호사가 ‘장기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서약을 지켜보며 느낌이 참 많았습니다.

장기를 기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굳이 유교적 전통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기 장기를 떼어내도 좋다는 약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결단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흰옷 입은 5,200명의 여성이 이런 결단을 해내는 광경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낌새를 채지 못할 정도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물결입니다. 저는 이 물결의 일렁임을 느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이 물결이 우리 사회를 새로운 도약대로 이끌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거의 민주화운동이 ‘제도와 세력을 바꾸자.’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민주화운동은 ‘문화와 삶을 바꾸자.’는 것이라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게 바꾸는 것이 ‘새로운 민주화운동’이라는 정의가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살만한 세상,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니까요.

지난 3월, ‘국가적 자부심’에 대한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조사에 의하면 세계 32개국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국력은 8위인데 비해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적 자부심’은 31위였습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입니다. 32개국의 평균을 넘는 건 ‘스포츠’가 유일했고, ‘공평성’이나 ‘사회보장제도’는 평균의 70%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나 ‘사회보장제도’의 부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더 모질게 준비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라는 사실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후손에게 이런 상황을 그대로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여러분에게도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감당해야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믿는 분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는 소망을 갖고 있는 여러 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살고 있는 터전에서 시작합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아리에서,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모임을 만듭시다. 이웃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작은 눈덩이를 굴려 큰 흐름으로 바꿔냅시다. ‘희망 바이러스’를 만들고 전파합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여러분과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안도 듣고 싶습니다. 작은 물결을 큰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혹은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내일, WHO 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로 떠납니다. 스위스를 거쳐 스웨덴도 방문할 생각입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스웨덴의 복지제도도 살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여러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2005.5.15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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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어버이날’입니다. 여러분, 부모님 가슴에 꽃은 달아드리셨는지요? 혹 저처럼 이미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하루 종일 가슴이 메었겠지요?

저는 어제 잊지 못할 ‘어버이날’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바로 ‘입양가족’들의 어버이날 행사였지요. 사실, 행사라고 하기엔 너무 조촐했습니다. 그저 작은 식사자리였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과천 정부청사의 식당 한쪽을 빌려 입양가족들을 초청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대신해 제가 입양 부모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만든 자리였습니다.

초청에 응해준 가족은 모두 57명이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가면서 잠깐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이 입양사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그런데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는 분들은 모두 ‘공개입양’을 택한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부모 모두를 위해 입양사실을 미리 공개하는 편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그런 분들을 만나니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식당은 아이들 웃음과 주고받는 인사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런데 소란스런 분위기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안고 인사하는 부모님들의 표정도 마치 붕어빵처럼 똑같이 밝고 화사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한 아이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었습니다. 짧은 순간인데 벌써 눈자위가 붉어진 어머니들이 눈에 띕니다. 말로 다 못할 그 마음이 전해와 가슴이 먹먹합니다. 다음은 제가 인사할 순서입니다. 막상 일어서니 말문이 막힙니다. 행사를 준비한 직원들이 미리 준비해준 말도 있었고, 제 나름대로 생각해둔 말도 있었지만 느낌을 표현하는 데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결국 세 마디만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연설 가운데 가장 짧은 연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니 ‘존경합니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자꾸 제 앞자리에 앉은 세진이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 다리와 한쪽 손이 불편한 아이입니다. 미국으로 입양된 ‘애덤 킹’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세진이가 가지고 있는 장애도 ‘애덤 킹’과 거의 같습니다.

세진이는 의젓하고 씩씩했습니다. 밝고 환한 표정이 잘 어울리는 어린이였습니다. 부모님은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아기 집’에 맡겨진 세진이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입양할 때 세진이는 두발과 세손가락이 없는 중증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진이는 걷고, 뛰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피아노도 치고, 자전거도 탑니다. 등산도 했다고 합니다. 세진이를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준 그 부모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분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두 번 세 번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고가 어디 말로 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입양을 결심한 분들의 결단은 정말 숭고한 것입니다. 저는 그분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어버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5월 11일은 내년부터 시행될 ‘입양의 날’입니다. 본격적으로는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올해는 ‘입양의 날’ 제정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입양, 특히 국내입양에 대해서는 아직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제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국내입양 활성화를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 다른 부처와 협의하고 설득하고, 준비할 일이 더 남아 있습니다. 서두르겠습니다. 국내 입양 활성화가 유일한 대안입니다. ‘아동 수출국가’라는 말을 더는 듣지 않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십시오.

2005.5.9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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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오늘은 하소연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릴 작정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분들이 혹 ‘솔로몬의 지혜’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진 마십시오. 들어만 주셔도 좋습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모든 국무위원이 참여하는 ‘재원배분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정부 예산을 어디에 중점을 두고 쓸 것인지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습니다. 조금 전까지 합숙하며 토론하다 돌아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가뭄을 만난 농부가 ‘물싸움’을 하기 위해 논둑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릴 적, 가뭄이 한창이던 시골이 생각납니다. 부천, 평택, 양평…. 벌써 세상을 떠나신 제 아버님은 경기도 농촌마을을 구석구석 찾아다닌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어린 날을 속절없는 ‘농촌아이’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한여름 가슴을 바짝바짝 태우던 그 ‘가뭄’이 농사꾼에게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듯합니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애타게 바라보다 마침내 냇물마저 말라 버리면 ‘박박’ 소리가 날 때까지 우물 바닥을 긁어대던 그 심정 말입니다.

그 정도로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복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획기적인 복지재원 확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안되면 어거지나 땡깡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곤혹스러웠습니다. 모든 국무위원이 나름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토론회에 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야 하는 절박한 사연을 갖고 온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물싸움’은 그래서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복지다운 복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국민의 정부’ 이후 여러 제도를 도입했지만 아직 아닙니다. 큰 배가 방향을 돌리자면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여전히 ‘복지’는 부차적인 문제, 좀 나중에 해도 되는 고민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상당합니다. 지난 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모시면서 인내하고 감당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잘 참아왔습니다. ‘가난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쪽이었습니다. 가끔 정 많은 민족성과 이런 생각이 충돌해 국민들이 벌컥 화를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세는 ‘복지보다는 성장’이었습니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OECD 사회장관회의에 참석했을 때도 느꼈던 일입니다만 우리 복지제도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체되어 있습니다. 경제규모는 10위권인데 복지수준은 맨 끝에서 순서를 매기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외국 전문가들이 “그런 상황에서 사회가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지 않는 것이 놀랍다.”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우리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는 모두 적극적인 복지투자를 해왔습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은 시점에 OECD 국가는 평균적으로 GDP의 20.4%를 사회복지분야에 지출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8.7%입니다. 어떤 전문가는 말합니다. 2030년이 되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성숙되어, 지금 복지 선진국인 유럽 여러나라 수준에 자동적으로 이르게 된다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 아닐까요?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30년을 그냥 이렇게 세월이 가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민이 언제까지나 참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솔직히 저는 요즘 마음이 급합니다. ‘끓는 국은 맛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속에서는 이미 펄펄 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출산 고령사회’라는 메가톤급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오싹해지기도 합니다. 지난 몇십년을 ‘경제대국-복지후진국 모델’로 사회를 밀고 왔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 부담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고민은 여기서 새롭게 시작됩니다. 복지재원을 어디서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요? 지금 감당하고 있는 것도 버거워 하는 국민이 상당수인데 짐 하나를 더 짊어져 달라고 요청해도 괜찮은 걸까요? 과연 우리가 걸어온 지난 과정과 지금 닥친 상황을 종합해서 국민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하고 마음을 모아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어렵더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무위원 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온 제 기분은 한마디로 ‘희망적’입니다. 앞으로도 난관은 많겠지만 경제와 복지를 ‘선순환 시키자.’는 총론에는 상당한 합의가 이뤄져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각론입니다. 첩첩산중은 아니지만 아직 ‘산 너머 산’입니다. 그러나 꿋꿋이 앞으로 갈 작정입니다. 가다가 지치거나 다치면 여러분에게 소리치겠습니다. 그리고 허락하신다면 여러분께 기대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일어나 앞으로 또 가겠습니다. ‘아자! 아자!’하면서 가겠습니다.

2005.5.2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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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지지난 토요일, 오마이뉴스 축구팀과 시합하다가 눈썹 언저리가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맨 적이 있다. 의사선생이 상처를 꿰매는 동안 작년에 있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생각났다. 눈썹 근처 이마가 찢어졌는데 병원비가 무서워서 치료도 못 받고 그냥 집에서 혼자 바늘과 실로 상처를 꿰맸다는 50대 남자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주에 바로 이 50대 남성을 치료해준 병원을 찾았다. 요셉의원-. 원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의원 원장의 설명을 듣다가 문득 ‘정문화’라는 유능한 후배 생각이 났다. 노숙자로 전락해 몇 년간 잊혀졌던 그 친구는 폐결핵으로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곧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빈곤층의 건강을 지켜주는 의료급여 제도의 사각지대는 약 200만 명에 이른다. 대부분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사람들이다. 건강보험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상당수도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제도만으로 건강을 지켜줄 수 없는 국민이 왜 그렇게 많은지, 왜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제때에 이뤄지고 있지 못한지 철저히 확인해야겠다.

물론 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러나 그걸 핑계로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사회는 당연히 활력을 잃게 된다. 책임감을 느낀다. 분발하겠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말할 만한 분들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한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책임을 전가할 생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희망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18년 동안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의 사람들을 끌어안고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열정이 펄펄 끓어 넘치는 요셉의원 원장님.

평생을 낯선 한국 땅에서 수녀로서, 의사와 간호사로서 살아왔다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 수녀님들. 이분들을 만나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분들의 가슴 속은 머나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퍼렇게 멍들어있을까 아니면 자부심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까? 고맙다, 고맙다고 하면서 연방 악수를 했다. 솔직히 포옹을 하고 싶었지만 수녀님들이라 망설였다. 결국 못하고 돌아왔는데 지금은 후회가 된다.

어느 정신 병원 원장님. 여의사인데 아주 명랑했다. 정신 질환자들이 약이 떨어져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면서 환자들을 만나러 이렇게 현장으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 말은 왜 그렇게 울림이 큰지, 또 그렇게 말하는 그 여의사가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그 외에도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부부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그리고 많은 자원 봉사자들, 프랑스로 입양을 갔던 우리 청년 형제, 금주 프로그램의 세계적 권위자인 재미 동토 의사 선생님 등등….

또 있다. 현역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 일에 참여해온 장군 출신의 어느 자원 봉사자. 이 분은 언제나 평상복 차림으로 와서 처음에는 ‘별’인 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전역한 후에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카이로 프라틱’이라는 기술을 배웠고, 가족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해 본 다음, 요셉의원 방문 환자들에게 서비스 해왔다는 것이었다. 콧등이 찡했다. 사실, 요셉의원을 방문하게 된 것도 이 분의 채근과 성화 때문이었다. 마음으로부터 이 ‘장군’에게, 이 ‘참군인’에게 감사드린다.

정부에서 끈질기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선의를 갖고 봉사하면서도 보상이라고는 오직 가슴에 차오르는 자부심뿐인 이런 분들이 있어 이 세상은 살만하고 또 아름다운 것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요셉의원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을 신뢰하고 존경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내일이고 우리의 희망입니다."

2005.4.25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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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임시 국회 때문에 이번 주엔 여의도를 자주 갔습니다. 국회를 오고가며 보는 꽃은 아름다왔습니다. 꽃길을 오가는 시민들의 여유 있는 발걸음과 밝은 표정들이 참으로 좋아 보였습니다. 봄은 꽃이고, 다시 솟아나는 힘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봄이라고 어느 곳에서나 다 꽃이 피지는 않나 봅니다.
국회를 둘러싼 신작로 가에선 꽃이 만발해 있고 머지않아 푹신한 눈 같은 꽃비가 쏟아져 내릴 텐데도 정치가 몸담고 있는 여의도는 약간 냉랭한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께서 언급했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몇몇 비판은 상당한 추위를 느끼게 할 정도였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반도에 내내 햇볕이 쏟아졌건만 유독 일부 정치권만 지독하게 외면하고 반대했던 그때 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의사당 안은 춥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어떤 비판을 했는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 비판이 있었습니다. 한미동맹에 상처를 입혀 오히려 안보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우리가 도대체 균형자 역할을 할 만한 힘이 있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비젼이고 실현해야 할 우리의 목표입니다. 국민이 인지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지도자는 방향에 대해 말을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역시 국민이 희망이고 힘입니다.
의원의 56%가 부정적이지만 국민들 74%가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하여 긍정적이라는 보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탄핵에 맞서 촛불을 들고 나섰던 것이 국민이었듯이, 우리 국민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평가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협력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구요. 이것은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체험되고 전승되면서 한반도의 산과 들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일본의 UN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시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한미동맹보다 더 강력한 미일동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UN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음에도 일본이 과거제국주의 침략사를 미화하는 태도나 자세 그리고 독도에 대한 망령된 주장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 일부 정권 담당세력인 미국 네오콘과의 동맹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일본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미국정부마저 조기의 일본 UN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다소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이고 경제강국인 두 나라가 힘을 합쳤음에도 마음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외교문제가 군사력과 경제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님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미국과의 동맹은 여전히 여러 가지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이해해야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아직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균형자론을 말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고충을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동북아균형자론을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은 왜 이겠습니까. 한반도 평화에 대한 걱정과 근심 때문입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에 따른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은 자칫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안되는 일이지요. 그래서 대통령께서 한국국민의 동의 없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어떤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것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하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서 나오는 당연한 의무이고 권리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고충을 이해하고 결단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6자회담을 마침내 다자간평화안보체제로 전환 발전시키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미래에 만들어내고, 남북간 협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외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문제는 그것의 실현 방안이고 실천입니다. 실천의 과정에서 더 훌륭한 전략과 지향이 생겨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예감합니다.

여의도 길에서처럼 정치의 중심인 국회 안에도 꽃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에 국가적 민족적 자긍심의 꽃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황사대신 평화의 꽃비가 동북아에 두루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꽃길을 걷고 싶습니다.

2005.4.19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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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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