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쓰는 편지'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08.08.04 <45> 농장에서 식탁까지
  2. 2008.08.04 <44> 연중무휴 국정감사
  3. 2008.08.04 <43>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4. 2008.08.04 <42> 청계천 나들이
  5. 2008.08.04 <41> 패자부활전이 보장되는 사회

‘납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수준으로 만족할 상황이 아닌데도 성급하게 ‘안전하다’고 말한 점은 국민의 기대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식품관리 정책’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절대적인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에 맞출 수 있습니다. 핵심은 생산자 중심의 식품관리 정책을 소비자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는 것입니다. 식품에 대한 정책 패러다임(판단 기준)을 ‘증산’에서 ‘안전’으로 바꿔야 합니다. 

안전을 관리하는 기관인 식약청이나 또는 어떤 기관이 ‘농장에서 식탁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감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생산을 지원하는 기관이 덤으로 안전관리까지 담당하는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식품과 관련된 부처가 7~8개가 됩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중금속, 농약, 동물 항생제 등 위해요소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일관된 관리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고 정부 안에서 의견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를 건설 기획 단계부터 시작하듯이 소비자 안전평가를 생산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제도와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걱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농민과 어민의 부담이 커질 것입니다.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농사짓고 양식하는 일이 더 까다로워 질 것입니다. 애써 지은 농수산물을 폐기하는 일도 많아질 것입니다. 위생시설이나 냉장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입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통관과정에서 안전성을 확인했지만, 앞으로는 외국에서 생산하는 단계부터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합니다. 수입업자가 안전을 확인할 책임을 지고,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을 하는 체제로 시급히 바꿔야 합니다. 생산자는 물론이고 유통 상인, 수입업자가 안전성을 동시에 책임지도록 준엄하게 해야 합니다. 식품의 안전성을 책임지지 않으면 엄중한 처벌을 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데 규제를 강화하면 어쩌란 말이냐?’는 원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생산원가가 올라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통상마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부담이 있지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식품안전’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고 결국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농어민의 부담은 국가와 사회가 나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만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나라는 이미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전에 ‘식품파동’을 겪었고,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소비자 중심의 식품관리 패러다임’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미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지목했습니다. 신뢰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고, 신뢰가 구축된 나라만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식품에 대한 ‘신뢰’는 원초적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왕에 불거진 ‘식품안전문제’에 대해 한발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2005.10.24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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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국정감사가 끝났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시험’을 치는 셈입니다. 불과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해와 올해 국정감사를 받는 느낌은 참 다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잔뜩 긴장했습니다. 우선 의원석에 앉아 질의를 하던 처지에서 증인석에 앉아 선서를 하고 답변을 하자니 어색했고요, 동네 뒷골목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복지부 업무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때는 가끔씩 앞이 암담해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국정감사를 마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잔뜩 긴장하고 벼락치기를 한 덕분일 수도 있고, 햇병아리 장관이라고 좀 봐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우선 의원들이 지난해 보다 훨씬 많이 준비했고, 집요했습니다. 좀 봐주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복지부 정책 구석구석에 대해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미처 몰랐던 ‘허술함’이 드러나 아찔하고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시험을 치르면서 그동안 깊이 느끼지 못했던 ‘국정감사’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국정감사를 하는 걸까요? 국정감사가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국정감사를 시작하면서 복지부 간부들에게 ‘국민을 향해 답변하고, 설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질문이 쏟아지고, 추궁이 이어지지만 결국은 국민에게 정책 집행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라는 생각을 갖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다행히 복지부 직원들이 제 말뜻을 이해하고 그렇게 해준 것 같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이번 국정감사를 받으면서 국민으로부터 많은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실수가 드러나고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일들이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실수일지 모르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일 것입니다. 정책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국민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적지 않은 개선점이 있다는 사실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정감사는 일종의 보약입니다. 공직사회는 ‘국정감사’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 년에 한번씩 ‘국민의 눈높이’라는 특단의 보약을 선물 받는 셈입니다. 행정이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어 집을 짓는 일이라면, 정치는 기초공사를 하는 일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기초를 잘 잡아줘야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바닥에 금이 간 곳은 없는지, 썩은 기둥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정감사는 집요하고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이 한두 달씩 집중적으로 준비해서 떠들썩한 대형 이벤트를 벌이는데도 국정감사가 ‘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진행되기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묻히고 자극적인 한두 사안만 도드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정감사라는 필터링을 거치면서 국민의 실생활에 직결된 중요한 정책과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데 그렇게 결론이 나기보다 ‘한탕주의’ ‘선정주의’로 흐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정감사의 내용은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국민에게 비춰집니다. 그런데 한날한시에 모든 정부 부처에 대한 감사를 하다 보니 국민이 꼭 관심을 가져야할 사안이 맥없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정감사’를 연중무휴로 하면 어떨까요? 입시가 끝난 1월에는 교육위원회, 농사철을 앞둔 2월에는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식중독 사고가 많은 여름을 앞둔 5월에는 보건복지위원회 하는 식으로 한 달씩 돌아가면서 국정감사를 한다면 훨씬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국정감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한 달씩 돌아가며 각 부처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어서 좋고, 공직사회 역시 넉넉한 시간을 갖고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과정이 언론을 통해 투명하게 국민에게 전달되면 공직사회와 국민의 ‘눈높이 차이’도 훨씬 줄어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2005.10.17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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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며칠 전, 일 때문에 시간을 놓치고 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평소 자주 가는 설렁탕집을 들렀습니다. 손님이 제법 많았습니다. 어르신 여러 분이 식사를 하시다가 제 손을 꼭 잡고 ‘요즘 중국산 수입김치 때문에 국민들 걱정이 많으니 잘 해결해 달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설렁탕집 주인이 ‘오늘 복지부 장관께서 다녀갔으니 우리 집 김치는 문제없다고 써서 붙이겠다’고 농담처럼 하는 말씀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까요?

중국산 김치에서 납이 검출되고, 국내산 양식 어류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면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제, 중국산 김치 31개 제품과 국산 김치 28개 제품을 수거해 정밀 검사한 결과를 보고받았습니다. 조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연구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해 내린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우선 국내산 민물 양식 어류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급합니다. 해양수산부에서 사후대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만 범정부 차원에서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단기적인 대응과 함께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질책하는 것처럼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말이 안됩니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우리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식품관리정책’을 펴야 합니다. 마찰과 부담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사회적 파장과 부담을 두려워하면 문제가 생기고 난 뒤에 대응책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문제가 생기기 전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면 다소간의 마찰과 부담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해양수산부나 농림부 등에서 수산물이나 농산물의 안전 관리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 농어민의 입장이 배치되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모든 불편함과 부작용을 감당하더라도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고려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도 국민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근원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단기적인 대책은 대책대로 세워서 추진하되 근원적인 문제해결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얼굴을 붉혀야 하는 상황이 오면 붉히겠습니다. 정부 부처마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국민의 입장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자고 요청하겠습니다. 보건복지부부터 권한이나 역할을 양보할 것이 있으면 내놓고, 책임을 더 져야 할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도 국민의 건강보다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2005.10.9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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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일요일에 쓰는 편지가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청계천 나들이

“어, 안 오신다고 뉴스가 나갔는데... 어떻게 하지. 천상 정정 보도를 해야겠구먼”이라고 어떤 언론사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이 말을 던져왔다. 청계천 복원 축하 행사장 입구에서 우연히 부딪쳤는데 이 분들이 그랬다.

방향이 맞고, 서울 시민은 물론 많은 국민이 환영하는 ‘다시 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우리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 지금도 많은 시민들이 줄이어 청계천으로 나들이 하고 있다. 참으로 괜찮은 일이다.

약간 주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이명박 시장이 어려운 결단을 했고, 결국 해낸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지만 뭐가 좀 그렇다. 혹시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 싶어 그랬다.

그러나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식이 끝난 뒤에 원혜영 의원, 채수찬 의원 그리고 기자 한 사람과 청계천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와 걸었다. 유쾌했다. 많은 어려움에 부딪쳤을 텐데 잘도 해냈다. 이 시점에서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2005.10.5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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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패자부활전이 보장되는 사회

‘황기순’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습니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얼마 전, 어떤 라디오 방송을 통해 황기순 씨 이야기를 듣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황기순 씨는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 도박에 빠졌습니다. 필리핀인가 하는 곳에서 빈털터리 노숙자로 떠돌며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황기순 씨가 요즘 방송에 나와 다시 ‘입담’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필리핀은 잊어주세요’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황기순 씨의 이름을 다시 발견한 것은 결재를 하면서 함께 올라온 보고서를 통해서였습니다. 지난 9월 8일, 바로 그 황기순 씨가 한국뇌성마비복지회를 방문해 휠체어 30대를 기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열흘 동안 전국을 돌며 자선 콘서트를 해서 얻은 수익금이라고 합니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황기순 씨에 대한 기사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를 상대로 ‘눈물 나는’ 강연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곧 예쁜 학교 선생님과 결혼을 할 거라는 예쁜 소식도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사실, 저는 황기순 씨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성품이 어떤지, 재능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다시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나락에 떨어졌던 한 사람이 돌아와 이제는 ‘이웃’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고마울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무한경쟁의 정글’에 비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영원히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사업에 한번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쫓겨 난 사람은 제자리로 돌아가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결과는 참혹합니다.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직장인들은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합니다. 사업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노동조합은 타협 없는 외길 투쟁을 반복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메말라 갑니다.

이런 일들이 ‘무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쟁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너무 한가한 얘기를 한다는 타박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가 꼭 행복하고 바람직한 것일까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외길 수순’인 걸까요?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패자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패자들’에 대한 부담은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패자부활전이 없는 무한경쟁사회는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 뒷덜미를 붙잡고, 우리의 발길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즉, 한번 실패한 사람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게 보호할 수 있는 안전 그물망을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9월 26일 발표한 ‘희망한국 21-함께하는 복지’도 그런 대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번 실패한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고, 실패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의 손을 맞잡아 주기 위해 2009년까지 8조 6천억 원이라는 재원을 투입할 생각입니다.

사실, 8조 6천억 원은 엄청난 돈입니다. 당장 그렇게 큰돈을 국민에게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 일인지 따져 묻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낡고 구멍 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다시 만드는 일은 한시가 급합니다. 한축으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면서, 다른 한축으로 안전망을 수리하는 일에 당장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시장만능주의’ 또는 ‘시장경배사상’에 대해 분명한 재검토와 보완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가 건강한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데 엄청난 장애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합니다. 세계화와 더불어 연대와 협력의 질서가 필요합니다. 소수의 ‘승자들’이 다수의 ‘패자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수많은 ‘패자들’이 다시 생산의 현장으로 돌아와 재기하고 또 성취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황기순 씨가 동료들의 따뜻한 손길 덕분에 고국에 돌아와 이제는 어려운 이웃을 향해 다시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말입니다.

2005.9.27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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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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