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 참배 행사가 열린 29일 오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마련된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이 추모의식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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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아버지를 땅에 묻던 날도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졌다. 믿기 어려운 아버지의 죽음 앞에 눈물만 흘리던 딸 병민씨는 "살포시 어깨에 내려온 그 눈이 제 어깨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도식이 열린 2012년 12월 29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그의 묘지에는 또다시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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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국민을 살려내라고 했는데... 김근태 앞에 설 낯이 없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손학규 민주통합당 전 대표가 "김근태 앞에 설 낯이 없다"며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명령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 명령은 살아있다"며 "그걸 지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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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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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김근태 앞에 설 낯이 없다"며 입을 뗐다. 손 전 대표는 "그 명령은 단지 정권을 잡으란 게 아니라 세상을 바꿔 특권과 반칙 아래 신음하는 국민을 살려내란 뜻이었다"며 "정권교체 실패에 좌절한 한진중공업 최강서 조직차장, 현대중공업 해고노동자 이운남씨 등 다섯 분이나 벌써 세상을 하직했는데, 당신은 그걸 염려한 것"이라며 절친했던 벗에게 미안해했다.

김 상임고문의 후배 장영달 전 의원 역시 "의장님을 보냈던 1년 전에는 그 숭고한 뜻을 성취하리란 마음으로 돌아섰는데 '오늘은 어찌해야 될지'하는 아득한 심정 등으로 여기 왔다"며 비통함을 드러냈다. "역사의 고비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고,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선배님은 곁에 안 계시다"던 장준영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추모사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추모 행사 내내 무덤가 주변에서 눈물을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선거 패배를 반성하고, 야권을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회를 맡은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저희가 잘못했다, 단일화에 매몰 돼 국민의 고단한 삶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고,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기득권을 다 내려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오전 10시 서울시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서 안충석 신부는 "(대선은) 전략과 정책의 경쟁인데, 이게 없어 필패를 초래했다"며 "컨트롤 타워가 없었고, (사람들의) 손발이 맞지 않았고, 새누리당만큼의 준비가 없어 당했다"고 지적했다.

"매해가 2012년" 사랑·희망·위로를 말하며 김근태를 기억하는 사람들

  12월 29일 서울시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1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한 딸 병민씨 등이 손을 잡고 '사랑으로'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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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에서 유족 대표로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딸 병민씨. 왼쪽은 아들 병준씨, 가운데는 부인 인재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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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내일'을 말하는 이들은 있었다. 추모 미사를 집전한 김남길 신부는 "김근태 의원이 갈망한 민주화는 자리에서 오는 권력, 진실과 정의에서 오는 권위를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며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함세웅 신부도 "2012년은 올해가 아니라 매해며, 우리는 매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는 "김근태 선배가 떠난 후 1년을 되새기며 저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선배가 고문을 견디며 끝까지 후배들 이름을 대지 않을 수 있던 것은 그가 온전히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랑의 회복, 죄의 참회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며 "어렵겠지만 (선배처럼) 겸손하게, 참고 견디는 사랑으로 가보겠다"며 추모사를 끝맺었다.

김 상임고문의 자녀는 그를 그리워하고, 그에게 미안해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줬다. 아들 병준씨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상상해봤다"며 "아마 만나는 분마다 손을 잡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듯하다"고 말했다. 딸 병민씨도 "굉장히 슬프고 힘든 1주기를 맞이했지만, 아버지라면 희망을 말씀하셨을 것"이라며 "여기 내리는 눈에, 바람에 위로받으시고 2013년을 맞이하셨으면 좋겠다"고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12월 29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그가 잠든 곳으로 가는 길에 놓인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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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1년 전 하관식 때 아버지를 보내드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 날 눈이 왔는데 얌전하게 내리는 모습이 아버지가 제 어깨를 두드리면서 위로해주시는 것 같았다.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는데 오신 분들 모두 위로 받고 가셨으면 좋겠다"


29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김근태 묘역에서 열린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1주기 참배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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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고문의 상징인 '함박웃음'처럼 펄펄 내리는 눈은 아니었지만 딸 김병민씨(30)의 말처럼 묘지를 찾은 사람들을 '괜찮다'라고 쓰다듬으며 내리는 눈이었다.


'나는 정직과 진실이 이르는 길을 국민과 함께 가고 싶다'는 고 김 전 고문의 묘비위로도,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언을 지키지 못한 많은 야당 인사들 어깨 위로도 조용히 눈발이 흩날렸다.


◇진정성 있는 '휴머니스트'


김 전 고문의 타계 1주년을 하루 앞두고 29일 열린 추모행사에는 부인 인재근 의원을 비롯해 한명숙 전 총리, 강금실 전 장관,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 등 야당 인사들과 함세웅 신부 등 천주교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나온 각계 인사들의 발언을 관통하는 단어는 '진정성'이었다.



29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1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한 고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추도미사와 추도식이 열렸던 창동성당에서 만난 사위 김동규씨(32)는 "장인어른이 굉장히 진정성이 있는 분이셨다. 결혼하기 전에도 용산집회 등에 제가 모시고 갔는데 그런 분들을 바라보시는 눈빛에서 정말 저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구나, 진심으로 뭔가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정치인처럼 사진 잘 나오는 맨 앞줄에 앉아서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맨 뒷줄에서 촛불 하나를 가지고 계시더라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모습들을 봤다"며 회상에 잠겼다.


강금실 전 장관도 "김 선배님은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주의자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추도사에서 "약자라는 이유로, 피해자라는 이유로, 정의가 우리편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잃고 말하고 행동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죄를 남기는 지 깨달아야 할 것 같다"며 "우리가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과연 나 자신을, 내 옆의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마음의 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준 김근태 선배 감사합니다."라고 밝혔다.


◇성탄절엔 가족과 영화, "검소하라" 말씀하시던 가정적인 아버지


김 전 고문은 평소 자녀들에게 '검소한 생활을 하라'고 강조했고 몸소 실천했다고 한다.


김 전 고문이 생전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고 여의도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면 돈을 아끼기 위해 뒷골목 분식집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추도식장에서 만난 김 전 고문의 아들 김병준씨(33)는 "아버지가 평소 동생과 저에게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라'고 늘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대학교 다닐 때도 일주일에 용돈 5만원 정도 받았다"며 "아버지도 의원직 그만 두신 뒤에는 이동하실 때면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정도로 검소한 분이셨다"고 덧붙였다.


추도미사를 진행한 김길남 신부도 "(김 전 고문이)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겸손하고 가난을 실천하며 친절하고 온유한 분으로 평판이 자자하다"고 했다.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민주당 전 상임고문 © News1 김태성 기자



딸 김병민씨는 김 전 고문을 따뜻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로 기억했다.


김씨는 "아빠가 많은 사회활동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성탄절이면 가족과 꼭 영화를 보러갔다"며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이셨고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또 "늘 '젊은 사람들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오빠랑 제가 너무 자기 사는 데만 매몰돼서 사는 걸 원하지 않으셨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셨다"고 회상했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오전 10시에 시작한 추모행사는 김 전 고문의 묘역이 있는 경기도 마석모란공원까지 오후 4시가 넘어 끝났다.


이날 행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00여명의 시민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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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김근태

                                           -  도종환

김근태가 참혹한 고문의 날들을 빠져나왔을 때

살아 나와 왼팔로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을 때 김근태가

한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을 때

나는 내 시의 언어로 그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두렵거나 주저하거나 황망하였다

그의 영가(靈駕) 옆에서 잊었던 혁명가요 몇 소절을 부르다 돌아오는 길

눈발이 몰아쳐 국밥집을 찾아들어갔다

영하의 날씨처럼 찬 소주를 털어 넣으며

김근태가 없는 여백을 헐렁한 이야기로 채웠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의 바다 위에서 최후까지

우리를 끌고 가야 할 명료한 선장인 그의 얼굴이

한쪽으로 기울고 그가 사용하는 동사가 어눌하며

발걸음이 느려지는 게 우리는 불만이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고통에 예민한 살과 뼈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칠성판 위에 알몸으로 꽁꽁 묶어놓고

전기로 지져대던 이십여 일의 낮과 밤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욕조에 머리를 처박고 항복을 강요하던 날들을

뼈를 부러뜨리고 저항하는 조직과

민주주의의 실핏줄을 짓이기던 가을밤을

남영동 그 죽음의 방을 구둣발을 붙잡고

짐승처럼 살려달라고 매달려야 했던 피맺힌 목청을

창문도 창틀을 부여잡고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그 외딴곳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고문을 참다 발뒤꿈치가 벗겨져 피가 흐르고

검푸르게 살들이 죽던 순간들을 증언하지 않는다면

시는 무엇을 노래한단 말인가

이렇게 처절하게 한시대를 살아내다

늘 다니던 곳에서도 길을 잃고 집 근처에서 길을 묻다

마른 옥수숫대처럼 스러져간 영혼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고문을 이겼어도 이길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시대를

한 생애를 다 던져도 역류하기만 하는 시대의 격량을

김근태를

김근태의 필생의 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있으랴

이렇게 쓰러진 김근태를 보고도

내 시가 흐느끼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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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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