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김근태 기고문

20016[통권 제232]

유마의 방 - 정치, 정치인, 화두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사물에 몰두하면서 헌신할 수 있는 열렬한 정열 그리고 사물과 거리를 두고서 바라보는 냉정한 관찰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요즈음 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요즈음 부쩍 주변사람들로부터 코 수술을 권유받고 있다. ‘목소리까지 유권자들에게 부담을 준다면, 요즈음 같은 이미지시대에 큰 손해 아니겠느냐고 반농半弄조로 이야기하는 분도 있고, ‘15년여 동안이나 사시사철 비염으로 고생을 하니 어떻게 하느냐’`고 정색을 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는 지금 꽤 건강한 편에 속한다. 조기 축구회에 나가 신나게 공을 찬다. 이런저런 일로 오르게 되는 산행을 큰 무리 없이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이따금 특히 환절기에 불쑥, 예기치 않게 흘러내리는 콧물 때문에 애를 먹곤 한다.

내가 가진 비염은 지난 시절 군사정권의 선물이다. 1985년 당시 `민청련` 의장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남영동에 끌려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전기고문, 물고문의 후유증이다. 코 수술이라는 것이 요즘은 레이저로 간단히 수술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들어서 안다. 그러나 지금껏 차일피일 미루어 왔다.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갔을 때 마음에 생긴 상처,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수계를 받은 불자는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짧지 않았던 감옥 생활에서 읽었던 부처님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어떤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 중 몇 구절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오랜 재야운동의 인연으로 지금껏 내게 가르침을 베푸시는 스님들도 계시다. 또한 우리 곁을 떠나서 수도생활한 지 40여 년이 넘는, 지금도 가난한 그래서 안타까운 나의 고종사촌 형님 법화 스님이 저어기에 계신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아직 부끄럽다. 아마도 프로 정치인으로서는 부족한 점일 것이다. 여하튼 이처럼 개인적 인연으로 나는 불교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어처구니없던 군사정권 시절, 억압과 광기가 난무했던 그 야만의 시대에 사람의 목숨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사이에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고통의 과정에서 배웠던 것 같다.

산에 오르는 길에 마주치는 산사에 들르면서, 스님들을 뵈면서, ‘사람의 목숨이 며칠 사이에 있는 것도, 밥 먹는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며,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 때 도를 알 수 있다면 나도 반은 부처님의 말씀을 혹시 체득한 것은 아닌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는 사이사이에만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큰스님께서 들으시면 꾸지람을 내리실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1995년도의 일이라고 기억한다. 당시 나는 야당인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권통합 논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즈음 성폭력 상담소에선가 일하던 여의사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그냥 재야에 남아서 사회의 등불이 되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그 분의 말은 이른바 현실제도권정치에는 기댈 것이 없다는 나름대로의 평가와 함께, 나 자신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것일 터였다. 그렇지만 당시 나의 심정은 정치판에 들어가 망가질 것이 뻔하다는 그 분의 나에 대한 걱정보다도 결국 당신도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느 사람에 불과하지 않느냐하는 실망감의 표현인 것 같아 내심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웠다.

현실정치판에 들어온 이후에는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써라라는 말부터 너무 신중하고 이상론에 치우친 것 아니냐’, ‘자기 색깔이 왜 없느냐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말을 들었다.

정직과 성실을 버릴 수도 없지만 그와 동시에 냉정한 계산 또한 요구되는 현실정치의 주문은 내게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역사성을 부정하며 살 수는 없다는 점이다. 나는 이 점에서 모름지기 정치인들이야말로 중생이 앓으니 보살이 앓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헤아려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처럼 국민들이 정치에 등 돌리고 정치인들에게 손가락질할 때야말로 정치가 국민에게 무릎으로 다가가야 하고, 그럼으로써 정치인이 국민에게 필요한 존재로 다시 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내가 존경하는 대학 은사 변형윤 선생님은,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개발독재 시절에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warm heart, cool head)’라는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의 경구와 그 정신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정치에 입문한 지 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은사님의 가르침과 함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글에서 그는 정치가의 자질로 정열, 책임감, 관찰력을 들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 속에 단순 무익한 격정이나 낭만적 태도가 아닌, 사물에 몰두하고 헌신할 수 있는 열렬한 정열사물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냉정한 관찰력을 같이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대목이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정치는 결코 경박한, 무책임한 유희가 아니며 진정한 인간적 행위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느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며 설득하는 일은 정말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고통과 쾌락의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진정한 중도의 이치를 말씀하면서 시작하신 것 아닌가. 자질이 부족하고 근기도 부족하여 그 끝이 어디가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지만 온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자 한다.

나는 지역감정의 탈피와 개혁의 성공 그리고 한반도에서 평화가 실현될 때에만 우리 민족이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매우 어렵다. 지역감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개혁은 지체되고 답보상태에 있다. 냉전적 사고는 아직도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정치야말로 전쟁을 평화로 바꾸고,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그 어려운 시대를 넘어 이만큼의 경제와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저력이 있지 아니한가.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한반도 내의 동과 서, 남과 북에 머물지 않고, 복구된 경의선, 경원선을 따라 유라시아 대륙으로 세계로 배낭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는가.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나는 내가 겪었던 그 끔찍한 기억들을 모두 묻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만 생각할 작정이다.

다시 젊은 시절, 그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지금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서원을 세우는 것, 이것이 요즘 나의 화두이고 화두인 것이다.

월간 해인 www.haein.org (출처:http://me2.do/5DpJIbh)



Posted by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