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찬바람 부는 종묘공원을 갔습니다.
햇살은 제법 따스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무려 500명이 넘는 노인 어르신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노상에서 점심식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부임하면서 복지부는 가정으로 치면 ‘어머니’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들이 춥고 배고프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보건복지부 장관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바람 막을 벽 하나 없는 한데서 점심식사를 하는 현장을 접하니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연말연시를 맞아 춥고 배고픈 민생현장을 찾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만났고, 청량리역에서 밥 푸는 일도 거들었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사람들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막상 찾아간다고 해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지는 장관이라면 ‘함께 있어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한 일입니다.

종묘공원에서 국 배식을 맡았습니다. 사진 기자들이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마치 사진 찍기 위해서 온 증거가 될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할 일 하고 가는 게 내가 취할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입니다!’
함께 간 직원이 못 알아보는 어르신들이 많을까봐 자꾸 그 말을 반복했는데 민망스러웠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또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 못들은 척 했습니다. 대신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손으로 조용히 해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배식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랑채의 김금복 회장은 11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한 푼도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지 않도록 간이시설이라도 했으면 하는 것이 김회장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김금복 씨의 이런 바램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종묘공원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것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수군거림을 들었습니다. 무료급식을 하면 노숙자가 늘어난다거나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함께 마음을 모으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너무 야박하고 야멸찬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관으로 일한지 이제 6개월이 다돼갑니다. 많은 공직자들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밖에서 생각하던 것보다 능력있는 공직자들이 많았고 배울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는 우리가 끌고 간다’는 확신을 갖고 일하는 공직자들을 발견하고선 대견한 느낌에 미소를 지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좀 더 ‘따뜻한 행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국민의 가슴으로 다가가는 행정, 따뜻한 행정을 해야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직사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더욱 통합되는 사회 그래서 정말로 일류 사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묘공원을 떠나면서 어르신들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가슴 서늘한 느낌, ‘춥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직원들을 불러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당부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의 대열에 참여하고 어르신들이 찬바람을 맞지 않으면서 따뜻한 한 끼 점심을 자실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냄비

롯데백화점에서 북한산 냄비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뉴스다운 뉴스였습니다. 한국의 설비와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만나 생산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서울의 백화점에서 이틀만에 다 팔렸다고 합니다. 정말 상징적인 뉴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에서 서로 가장 멀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냄비를 매개로 만나게 된 것이라고 얘기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이제 시작입니다. 냄비를 시작으로 많은 제품이 생산되어 한국에서 그리고 또 세계 곳곳에서 팔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가능할까 싶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성공단을 터전삼아 남과 북이 어떤 일이 있어도 힘을 모아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들이 근로환경에도 주의를 기울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좀 더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당연히 배려를 해야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개성공단은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단’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남과 북이 상생하는 협력의 용광로로 발전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남북이 함께 꿈꾸는 희망의 근거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은 우리 모두가 서로 배려하고 보살필 필요가 있는 그런 곳입니다.

정동영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말, 애썼습니다. 오랜만에 상쾌한 뉴스입니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냄비’를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아마 오고 있는 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끈따끈한 ‘개성산 냄비’가 말입니다.

개성공단은 휴전선 바로 너머 손에 잡힐 듯이 보입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6.25 사변 때 그랬던 것처럼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지뢰가 제거된 길을 따라, 북한 탱크가 줄줄이 내려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폐지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시장경제’가 그 모든 것을 넘어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진,선봉과 신의주 경제특구는 성공하지 못했고, 한국과 협력한 ‘금강산 관광’은 목하 성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와 연관해서 북한 당국자가 자신들의 국민 내치에 무수한 부담이 오고 있는데도(그 증거는 많습니다. 그 많은 남북교류 모두를 베이징을 거쳐서 서울-평양을 왕래케 하는 것은 휴전선에는 아직 긴장이 높고, 이른바 평화협정도 맺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고 정치적 결정일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개성공단 건설을 위해 왕래하는 한국 인사들에게 결심을 하고 대문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대담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경제에서, 민주주의에서 그리고 국제 정치 사회 영향력 모두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는 우리가 방어적일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나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미련 없이 폐지하고 나면, 북한 당국에게 노동당 규약과 북한 형법의 개정을 요구할 정당성과 당당함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꿈은 거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아니, 냉엄한 현실은 우리에게 꿈을 깨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동아시아에서 북한 동포들을 껴안은 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7천 5백만 민족의 생활권을 확보하고 평화․협력을 제도화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비전과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사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느낍니다.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 그렇게 느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시계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요? 일부가 관성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20세기 중반의 그 지루한 냉전적 증오와 대결의 뒤 끄트머리 어디쯤엔가 멈춰서서 시간을 그냥 낭비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2004.12.20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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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