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나는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의 삶을 정리할 기록자로 호출을 받았다. 병상에서 고통을 견디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힘들다고, 못 견디게 고통스럽다고, 차라리 비명이라도 질렀다면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토록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끝내 견디려고 애썼고, 견디다 떠났다. 그는 영원한 진술 거부에 들어가 버렸고 나는 서사의 주인공을 잃어버렸다. 한해 가까이 실명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의 집필에 매달렸다.

1주기를 앞두고 책을 내게 되어 그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었다고 여기던 차에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란 책의 출판기념회를 언론을 통해 보았다. 출판기념회 장소에 걸린 현수막이 경악스러웠다. ‘경축 이근안 선생 출판기념회’. 일찍이 자신의 고문 행위를 ‘예술’이라고 표현했던 사람답게 이근안은 당당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김근태 의장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말할 수가 없기에 그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를 밝혀두어야겠다.

김근태 의장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그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 의장은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하는 그를 용서하지 못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진심인지 의심스러웠다고 했다. ‘의심스러웠다’는 김근태의 표현은 일반적인 어법으로 바꾸면 ‘전혀 아니었다’에 해당하는 것이다. 진심이라면 눈물 한 방울은 흘려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김근태 의장은 이근안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싶어했지만 이근안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아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근안을 만나고 와서 김근태 의장은 밤잠을 설쳤다. 혹시 자기가 옹졸해서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오래 고민하고 괴로워했다고 했다. 김 의장의 고민을 들은 한 성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용서는 하느님의 몫이지 당신의 몫이 아니다. 김 의장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이근안이 정말 반성한다면 용서받는 것이고, 그러지 않는다면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용서를 받고, 받지 않고는 그 자신의 몫이다.

김근태 의장은 이근안을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는 원수를 용서하는 통 큰 인물로 포장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 용서를 구하는 것을 알면서 이근안을 용서하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였기에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아우라픽쳐스 제공
나는 김근태 의장이 고문에 가담했던 여덟명 중 한 사람을 뒷날 진심으로 용서한 사실을 알고 있다. 이근안과 달리 김 의장에게 ‘정말 죄송하다’며 눈물로 사과한 그 고문자는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그를 김 의장은 분명히 용서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이 사실도 김근태 의장은 생전에 발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아래에서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을 늘 기억했다.

‘고문으로 인생이 파괴되고,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누구로부터도 사과받지 못한 채 고통을 받고 있다. 내가 고문을 용서한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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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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