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에게는 네루가 있었다

개혁적 현실주의자

성폭력 상담소에서 간부로 일하는 여의사 한 분이, 1995년 내가 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그냥 재야에 남아서 사회 속의 등불이 되어 주셨으면 했는데.” 한두 번 들은 이야기도 아니지만, 매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습이 철렁철렁했습니다.

애정이 실려 있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도 결국 출세를 위해서 발버둥치는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는군” 하는 실망감이 역력한데에다 이제부터는 관심을 거두겠다는 선언 같아서 당황하곤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결국 나도 권력 의지에의 충동으로 코뚜레 낀 소가 되어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되물음으로부터 완전히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솔직한 나의 내면 풍경입니다. 물론 처음 정계에 들어섰을 때 내 나름대로 명분과 뜻이 분명했고 또 단순한 권력욕의 유혹 따위에 지지 않을 의지가 시퍼렇게 살아 있었지만 말입니다.

지금도 나는 그 분의 애정어린 비판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벤 킹슬러가 주연한 영화 “간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간디도 간디지만, 네루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간디의 뒤에는, 인도의 국민에게는 네루가 있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 간디가 인도 독립을 위해 비폭력 저항 운동을 벌이며 전국을 순회하고 죽음을 각오한 단식 투쟁을 벌일 때, 위대한 현실주의자 네루는 간디의 그 숭고한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정치를 했던 것입니다.

간디에게는 간디의 길이, 네루에게는 네루의 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해방 전후 상황과 비슷했던, 그러나 대처 방식은 크게 달랐던 프랑스의 역사가 생각납니다. 그들도 연합군의 도움으로 나치 점령에서 벗어났지만, 종전에 즈음하여, 드골 장군은 연합군이 파리에 입성하기 전에 모든 레지스탕스가 궐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인 스스로 프랑스를 해방시켰다는 역사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덕분에 프랑스는 그러한 정당성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나치의 잔재를 청산할 수 있었고,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습니다.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하던 그때, 나는 우리나라가 민주화로 인해 새로운 공간이 많이 늘어났다고 보았으며, 그 곳에서 “네루의 길”이, 도덕적 자부심에 기초한 “드골의 지혜”가 좀더 필요하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이제 올바른 역사 인식 위에서 지혜와 결단의 정치 능력을 보일 때입니다. 그래서 김근태의 정치, 김근태의 비전이 지금까지의 정치의 구태와 어떻게 다른지 보아 달라고 주문해 봅니다.

새로운 내일을 여는 새로운 사고와 방법으로 정치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실천할 용기와 신념으로 내가 서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1998년 김근태 의원 후원회 소식지 <푸른내일>호외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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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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