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야윈 당신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가 오그라들고 당신을 이루고 지탱하던 신념 뒤에서 말없이 각자의 몫을 다하던, 세포 하나하나가 굳어가는 고통은 알아채지 못한 채 '좀 잘 하지. 힘 있게 좀 더 못 하나…' 뒤에서 주문만 했으니 정말 미안합니다.

 

  
▲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모시고 빈소로 향하자, 한명숙 전 총리와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성호
 김근태

지상파에서 보여주는 당신의 목소리는 늘 기어들어가고 목은 뻣뻣하고 어깨는 경직된 것 같았습니다. 어렵고 위중한 사안앞에서도 마치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팔을 올렸다 내리며 의기양양한 몸짓으로 다가가 크게 손을 흔들어 악수해대던 정치인들 사이에서, 왜소한 모습으로 말없이 미소짓고 있던 당신은 마치 거인국에 온 걸리버 같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겉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패기가 없다' '지도자적 카리스마가 없다' 며 쉽게 마이너스 판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20대 초반 처음 만난 때부터 당신의 목소리는 나직하였습니다. 열대여섯이나 어린 한참 후배 앞에서도 당신은 높임말을 썼으며, 가르치려 하기보다 가만가만 당신의 생각을 찬찬히 펼치며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조심스레 각자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습니다. 스물 서넛 밖에 안 된 청년학생들에게.

 

학내에서 사찰을 벌이던 유도 태권도 합쳐 10단은 된다는 유단자 고수들인 짭새가 학교에서 물러가고, 까딱하면 증거도 없이 엎어치고 메어쳐서 경찰서 파출소로 잡아가던 전두환 정권이 서슬 푸르던 공안통치의 커튼을 드디어 내리던 때였습니다. 너희한테 자율권을 주겠으니 잘해보라던 1984년 봄이었습니다. 한낮에 찾아가서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나누던 대화의 결론이자 핵심은 사물의 본질과 민중의 살아있는 현실을 중심으로 보아야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길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의 과거와 다가오는 미래의 중간에 다리를 놓는 것이 지금 할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급하게 열매만 딸 것이 아니라 뿌리를 다지고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상이 제 아무리 자율화고 민주화고 유화라고 하지만 본질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한계적인 민주화조치는 오히려 더 극악한 모순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열매로 착각하는 한 나무는 열매 몇 못 맺고 시들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상과 제스처 이면의 숨겨진 진실을 보고 그 진실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고난 범벅이던 운동권 시절에도 곡절 많은 정치판에서도 시대와 사람을 보는 눈이자 당신의 숨은 잣대였을 겁니다.

 

당신은 겸허했습니다

 

그러하므로 진실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타자에게만 폭력적으로 들이대는 잣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공인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였으므로. 인간세상의 법을 넘어 세상만물을 바라보는 공평무사한 기준이었으므로. 그러므로 겸허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심 없이 거래가 지워진 낮은 눈빛으로, 시끄러운 복판에서도 나직나직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참으로 대화라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아마도 내면에서 비롯되는 순수한 정신이었을 겁니다. 홀로 석고대죄하고 있는 의사당에 문인 몇이 위로삼아 찾아갔을 때도 떠들썩한 인사동 밥집에서 만났을 때도 당신은 위력자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일개 문인 중 한 사람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오래 못 본 친구 하나 앉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말이나 시선에도 은근하고도 엄연히 존재하는 독점이나 점유 같은 것들이 당신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쌍말이 오가고 멱살잡이가 빈번히 출몰하는 정치판에서도 삿대질하거나 싸잡아 비난하거나 호통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투쟁과 수배와 투옥으로 점철된 지난날의 상처를 이력 삼아 떠벌이는 것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부자연스러워지는 몸동작 또한 당연히 고문 후유증이겠으나 고통을 과장하거나 이렇다 저렇다 해명하지도 않았습니다. 평생 논밭구렁에서 일해 허리가 낫처럼 구부러진 어느 농부가 나 이만큼 일했다고 민주화보상금을 받는 거 보았습니까. 톱니바퀴 돌아가는 트럭에 아슬아슬 서서 가고 있는 어느 청소부가 나 이만큼 고생했다고 찬탄을 요구합니까. 딱히 투사고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시대가 피해갈 수 없는 그 모퉁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므로. 누군가가 맞아야 할 정을 자신이 맞은 것뿐이므로. 고통의 나무에서 자란 과실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역사의 음지에 매장된 매 맞고 총 맞고 흙구덩이에 묻혀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것이므로. 그 과실 속에 담긴 씨앗이 자라 새로 태어나는 어린 입들에게 단 과육이 고루 주어져야 하므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저 사방팔방 확 트여 소유도 없고 주인도 따로 없는 드넓은 들판에 거대한 나무가 되어야 하므로.

 

날이면 날마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주민들이 철거된 도시 곳곳마다 마천루는 높아가지만 인간도 소 돼지도 행복하지 않은 시대에 당신의 고통스런 숨은 멈췄습니다. 강은 파헤쳐지고 바다에는 시멘트와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를 쳐대니 영문도 모르고 집을 잃고 하소연도 못하는 피라미도 붉은발말똥게도 눈물 뻐끔거리는 시대에 당신이 꿈꾸던 미완의 혁명은 멈추었습니다. 99명의 불행과 한탄과 눈물과 노고 위에 쌓아올려진 1명의 승리자가 위태로운 첨탑에 장군처럼 서 있는 이 한밤중 당신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쌓아두고도 받아 챙기고 숨기며 위력적인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지금은 밤입니다. 불빛 수만큼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것은 한숨소리요 불면이 일용할 양식인 일자리 없는 자들의 흐느낌입니다. 숨이 턱까지 닿게 뛰어도 생존조차 걱정해야 하는 네온싸인 화려한 지금 이 시대는 칠흑 같은 밤입니다. 사회에 발을 딛어 보기도 전에 빚에 허덕이며 젊다고 말하기에도 미안한 목숨들이 다 펴보지도 못한 날갯죽지가 부러져 고공에서 뛰어내리는 이 시대에 떠나간 당신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 1988년 6월 30일 김천교도소 앞에서 석방의 기쁨에 만세를 외치는 김근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김근태

갑남을녀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못나고 못 배우고 약한 자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이 시대가 바로 야만입니다. 한결같이 강하고 똑똑하고 잘난 것들에 사족을 못 쓰는 불편하고 불안한 이 시대를 슬퍼합니다. 이 야만의 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애쓰다 애쓰다 끝내 손을 놓친 당신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지도자로서가 아닙니다. 실패하고 거꾸러지는 이 땅에 숱한 갑남을녀 장삼이사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이른 죽음을 슬퍼합니다. 얼어붙은 겨울, 시장 모퉁이에서 파와 시금치를 다듬고 고등어 떨이를 외치는 고단한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박스를 끌고 가다 박스를 떨어뜨리고 차의 경적소리도 듣지 못한 채 자기 몸을 덮치기 직전에 바퀴를 멈춘 질주하는 차 사이에서 주저앉아 박스를 줍고 있는 허름한 민생으로서 당신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승리자여서도 아닙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승리한 적이 없으며, 패배 또한 우리 공동의 것이었습니다. 졌으되 위대하게 패배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어딨습니까. 당신은 위력적이지 않았으되 고문과 폭력과 위선과 치부로 점철된 우리의 슬픈 역사를 증거했습니다. 말없이 몸으로 감당한 만큼 큰 진실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은 오랫동안 다치고 아프고 약했습니다, 자랑하고 내세울 것 없이 묵묵히 제 일을 하고 그렇게 살다가는 이름 없는 다수의 민중들은 무력합니다. 착취하지 않고 제 것 이하의 값을 받으므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약하지 않으며 끈기있게 하루치의 자기 몫을 다하며 일생동안 살아갑니다. 그것이 강인함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위대한 이유이자 이 땅의 주인인 근거입니다.

 

화려한 언변과 큰 목청과 화려한 제스처에 중독되어 우리는 진실을 곧잘 놓칩니다. 지도자는 지배자가 아닙니다. 국민 하나하나를 굽어보고 살펴보고 고민하고 어떻게 더불어 잘 살게 할 것인지 궁구하고 실행하는 자가 위력적일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진실하게 만백성의 안위와 행복과 평등을 위해 고뇌하는 자가 목소리가 커질 필요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숱한 강력한 것들 때문에 우리 삶은 겁에 질리고 피폐합니다. 들여다보면 부풀려진 강력한 입들 때문에 우리는 기죽고 신경쇠약에 걸려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때 이른 죽음이 안타깝기 그지없으나 정치라면 권력과 치부와 위선과 동격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참답게 슬퍼할 수 있는 선배의 모습으로 살아 주셨으니. 당신의 순정한 생애가 우리의 가리운 눈을 뜨게 하고 참 민주의 밑거름이 되길 소망합니다. 부디 제 몸을 녹이는 아픔 속에서도 촛불로 타오른 당신의 생애가 가난하고 무력한 만백성에게 따스한 희망이 되어 주기를. 희망 속에서 눈을 감고 희망으로 눈을 뜨는 아침을 창조하고 싶어지기를. 당신이 가고 없는,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께서 돌아가신 그곳엔 부디 미움도 슬픔도 싸움도 고문도 없기를….

 

* 글쓴이 김해자는 시인입니다. 전태일문학상, 백석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무화과는 없다> <축제>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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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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