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민주대연합 이뤄야 정권교체 보인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민주당 김근태 진보개혁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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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진보개혁모임 공동대표는 인터뷰 내내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범야권의 단일정당 통합 가능성에 대해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의 고비마다 기적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08년 6월 촛불 국면에서 아고라 누리꾼들이 토론 내용을 책으로 엮은 일이 있다. 책 서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한국 민주주의에 절망하던 날, 아니 김근태가 신지호에게 패하던 날, 세상인지 역사인지로부터 받은 타격을 견딜 수 없었다.”


‘김근태’는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가 뉴라이트 계열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지낸 신지호 의원에게 18대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민주화운동 세력’의 정치적 패퇴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런 그가 3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정치활동에 나섰다. 지난 3월8일 민주당 진보개혁모임을 결성하고 공동대표를 맡은 것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은 반환점을 훌쩍 넘어섰다. ‘업적’과 ‘돈’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도 열렬히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이제 태도를 바꾸고 있다.


김근태 공동대표를 만나 진보와 개혁, 복지, 야권 통합과 연합,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김근태 대표는 정치인답지 않게 지나치게 사변적 언어를 구사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얘기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반도 재단’ 사무실에서 3시간 동안 했다.


인터뷰/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그동안 정치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하면서 지냈나?

“운동을 많이 했다.”


-민주화운동 말인가?

“(웃음) 아니고. 일주일에 사나흘은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고, 나머지 사나흘은 집 근처 초안산에 오르내렸다.”


-공부도 꽤 했을 것 같은데?

“2008년 미국에서 출발한 전세계적 금융위기로 우리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는데,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공부를 좀 했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왜 낙선했다고 생각하나?

“직접적으로는 뉴타운 돌풍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해 보상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둘째, 민주화 세력이 아파트 분양 원가나 국민연금 등 민생문제에서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데 대해 국민들이 책임을 물은 것이다. 아무튼 낙선은 국민의 명령이었다. 그래서 자숙하고 자성했다.”

 

브라질 룰라처럼 정파 독자성 유지하며 통합
야권정당·시민단체·노동자 등 원탁회의 필요
연합공천 난망…지분협상 통한 통합이 살길


-국민들이 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선택했을까?

“역시 민생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했고, 일자리 부족은 여전했다. 중산층과 서민의 박탈감이 커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미국 중심의 시장만능주의가 밀고 들어왔지만, 워싱턴 컨센서스가 뭔지도 제대로 파악을 못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그런 표현은 항복 선언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집결시키지도 못했다. 아이엠에프의 강제와 재벌 연구소의 대안적 방향이나 참고하면서 난파했다. 반면에 특권세력은 이런 상황을 활용해 동맹을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뉴라이트의 발호가 그 증거였다. 슬로건과 담론 투쟁에서도 우리는 패배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가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동안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패배했다. 이유가 뭘까?

“지표경제는 괜찮다고 하지만, 체감경기는 너무나 심각하다. 못 견디겠다고 반발하면 정권은 탄압을 했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을 사유화했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후퇴할 것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정권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지역구에서 유권자들과 늘 접촉하는데 내년에 정권 탈환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못 한다면 가히 재난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양김의 분열로, 재야의 분열로 노태우 정권이 탄생하고 국민들은 낙담했다.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그에 버금가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본다.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범야권 세력은 역사적인 규탄을 받을 것이다.”


-범야권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절박한 민생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방향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전망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통합과 연합으로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면 수도권과 부산·경남에서 한나라당을 패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담론과 슬로건 투쟁에서도 승리해야 한다.”


-담론과 슬로건이라면?

“경제의 인간화라고 할까,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도입하자는 것인데, 뭐라고 할지는 좀더 고민해야 한다.”


-진보개혁모임 결성을 주도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모임을 왜 만들었나?

“한마디로 정권교체 위해 의미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

“매주 목요일 점심에 모여서 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포럼을 하기로 했다. 거대 담론도 필요하겠지만, 구체적 사안에 집중하기로 했다. 5월에는 최저임금을 다루기로 했다. 주택담보 부채 문제는 6월에 다루기로 했다.”


-모임 이름을 왜 진보개혁으로 했나?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작은 정당이지만 정당 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덜 진보적이다. 일종의 개혁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대통합에 다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진보개혁모임이라고 했다.”


-모임에는 진보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있다. 그러나 민주·진보세력이 대통합을 이뤄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분들이다.”


-민주와 진보는 좀 다른 것 아닌가?

“어려운 질문이다. 진보의 문제가 발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세계에서 미국·영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가 관철되고 있다. 1%의 사람들이 세계 재산의 43%를 갖고 있다. 10%가 83%를 갖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이렇게 불평등하게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절박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진보적 정책과 대안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진보가 재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다고 보나?

“과거 반독재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학생, 노동자, 농민들이 진보적 목소리를 많이 냈다. 의미는 있었지만 바로 실현할 수는 없었다. 나는 민주대연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고 그다음에 진보로 가자고 했다. 잘 알다시피 정권교체는 했지만 그다음으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진보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됐다.”


-진보가 중요하면 진보정당을 강화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진보세력 일부에서는 개혁주의 세력을 빼고 가자는 주장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1987년 1차 민주대연합에 이어, 최근 상황을 2차 민주대연합으로 규정하고 싶다. 진보와 개혁주의 세력이 타협해서 함께 손잡고 가야 정권교체를 이루고 다수당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복지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자. 복지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보완적 의미가 강한데, 지금 시대정신이 복지인가?

“시장경제는 불공정성과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강자와 약자가 경쟁 전부터 구별된다. 어떤 경제제도를 택하면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보장하는 적극적 의미의 복지를 말하는 것인가?

“그건 복지가 아니라 민주적 시장경제라고 나는 주장한다.”


-진보개혁모임 창립선언문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

“공부를 더 해야 하는 부분이다. 아직 판을 제대로 못 벌였다. 지금도 시장경제가 마치 공정하고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에 반대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시장에 대해 말하자면,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추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펴는 ‘덴마크 모델’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편적 복지가 가능한 분야는 어디일까?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기초노령연금인데, 지금의 8만7000원에서 15만원 정도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한나라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반값 등록금’이다. 재원 확보를 둘러싸고 구체적인 논쟁을 벌였으면 좋겠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하는지?

“증세는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순서나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 토론과 타협의 과정 없이 증세는 불가능하다.”


-민주당과 통합 문제로 넘어가자. 손학규 대표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지금은 누가 대표를 해도 거기서 거기일 것 같다. 지금 민주당 지지율은 반사이득이다. 민주당은 아직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분당을에 출마했는데?

“이겼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이 지금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범야권 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브라질의 룰라가 12개 정파를 등록시켜 각 정파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뤄냈다. 그리고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민주당, 진보정당, 국민참여당 등 범야권 정당과 시민사회, 대중단체 조직, 노동자와 농민 조직이 참여하는 원탁 테이블을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4·27 재보선이 끝나면 본격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합이 안 되면 각 정당이 선거연대를 해야 하나?

“후보조정, 연합공천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지분협상을 통해 통합을 반드시 해야 한다. 통합만이 살길이다.”
 

-통합의 시한은?

“12월 중순까지는 통합전당대회를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방향이나 슬로건, 담론을 정하고, 200개가 넘는 지역구 후보 공천과 비례대표 공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국회의원 선거를 내년 4월로 생각한다. 시간표에 어긋남이 있다. 걱정이다.”

 

“박근혜 전대표가 대통령 안됐으면 좋겠다”
정치인으론 괜찮지만 국가지도자론 부적격
‘경제의 인간화’에 맞춰 민생 구체대안 찾을것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나? 진정성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꽤 평가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가 (대통령이) 안 됐으면 좋겠다. 지난 대선 때 ‘줄푸세’(줄이고, 풀고, 세우고)는 대표적인 시장만능주의 공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복지를 얘기한다. 일관성이 없고 설명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체계적인 철학과 비전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사학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그가 반대할 때 보니까 정서와 마인드가 7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더라. 정치인으로서는 괜찮은 사람일 수 있지만, 국가 지도자로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김근태 공동대표는 인터넷 홈페이지 ‘김근태가 살아온 길’에 아래와 같은 글을 띄워 놓았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김근태가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이다. 오래전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지만, 지금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희망을 말하고 있는 듯해 여기에 인용한다.


“1970년대 어느 추운 겨울날, 저는 수배자로서 길가의 갈대밭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어쩐지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이 슬며시 먹빛으로 변하고, 먹빛 하늘이 청동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적 같았습니다. 결국 저에게 아침은 왔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죽도록 몸살을 앓았지만, 저는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리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 김근태는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

김근태 진보개혁모임 공동대표의 일생은 제1막 박정희·전두환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 시기’, 제2막 정권교체에 합류하고 장관과 집권당 의장을 지낸 ‘정치인 시기’까지 전개되어 있다. 제3막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1947년생이니까 만으로 예순네살이다.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경기도 양평 양수초등학교, 서울 광신중학교를 나왔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가던 경기고를 나왔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고교 동기동창이다. 65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67년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70년 병장으로 제대했다. 서울대 졸업 1년을 앞두고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됐으며, 74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됐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 2대 의장을 맡았고, 그 때문에 85년부터 88년까지 감옥에 있었다. 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두 10차례의 전기고문·물고문을 받았는데,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해 국내외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았고,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은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했다. 90~92년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활동으로 다시 구속됐다.


95년에는 오랜 재야생활을 접고 민주당에 입당해 부총재를 맡아 정치를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국민회의에 합류했고, 96년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했다. 2002년에는 대통령 선거 당내경선에 나섰다가 중도하차하고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했다. 2004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둘러싸고 노 대통령과 마찰을 빚었는데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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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