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힘이 세다 

故 김근태 의원의 무겁고 고통스러운 삶이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 <진실은 힘이 세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故 김근태 의원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그러면서 사람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자국민이거나, 외국인이거나 모두 자유를 보장받고 행복을 누릴 권리, 인권을 얘기한다.

故 김근태 의원은 1985년 서울 남영동의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대공수사단 이근안 등에 의해 살인적인 고문을 당했다. 이후 그는 아내 인재근과 함께 국가가 한 사람에게 가한 폭력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고, 힘든 싸움 끝에 남영동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겼다. 이것이 씨앗이 돼 우리나라는 1995년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공권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별도의 법률조차 없는 상태다. 이 책에 따르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국가 폭력 피해자를 포함한 공권력 피해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고문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여전히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故 김근태 의원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63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내 귀여운 아이들아,
너희들하고 놀아 주지도 못하고 애비가 어디 가서 오래 못 와도
슬퍼하거나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외로울 때는 엄마랑 들에도 나가 보고
봄 오는 소리를 들어 봐야지.
바람이 차거들랑 옷깃 잘 여며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김근태 ‘항소 이유서’(1986. 5. 3) 중에서

원문보기

신고
Posted by 김근태

유 은 혜 의원 (민주당, 경기 고양 일산 동)

어디서든 눈에 띄는 큰 키와 고운 외모를 지닌 유은혜 의원은 얼핏 여유 있는 가정에서 순탄한 삶을 살다 ‘운 좋게’ 의원까지 된 사람인가 싶게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알고 보면 그는 어둡고 암울했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졸업 후에는 봉제공장에 취직해 노동운동을 했던 ‘열혈 운동권’이었다. 권력에 저항하다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던 위태로운 시절, 늘 두려웠고 갈등을 반복했지만, 흔들리면서도 서로 기대어 어려운 시절을 버텨왔다고 했다. 덕분에 더 야무지고 단단해진 유은혜 의원의 인생 멘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노동운동을 하다 수배 중이었던 남편과 은밀하게 결혼한 후 이리저리 숨어 다녔어요. 수배가 해제되고 서울 시댁근처에 살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성균관대학교 민주동문회에서 상근할 사람을 찾는다며 저에게 일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거기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김근태 의장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민주동문회는 그때 막 출범한 재야 단체인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국민회의는 민청련이라 불리던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김근태의장을 중심으로 범재야 세력이 모여 새롭게 만든 단체였다.
“민청련이나 김근태 의장님은 운동권에서는 워낙 친숙한 이름이었고, 가깝게 지내던대학 선배들 중에 민청련에서 활동하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운동권의 맏형 노릇을 하던 민청련과 그로 인해 숱한 고난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김근태 의장님에 대한 존경심과 부채감도 함께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무실까지 함께 쓰다 보니 더더욱 내 일, 네 일을 가릴 수가 없었지요.
얼마 후 국민회의의 규모가 커져 민주동문회 사무실을 다른 데로 옮겼지만, 일손이 모자랄 때면 언제든지 달려가 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근태 의장으로부터 ‘아예 국민회의에 들어와서 일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이후 유 의원은 김근태 의장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정치권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다.


투사와는 거리 먼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의 ‘김진지’

고(故) 김근태 전 의장과 함께

“김근태 의장이라고 하면 흔히 ‘민주주의의 대부’, ‘고난을 이겨낸 민주투사’등 강한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실제 모습은 매우 다르셨어요. 하얀 얼굴에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이어서 투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죠. 목소리도 크지 않으셔서 늘 조곤조곤 차분하게 말씀하셨고, 감정 표현도 과하지 않으셔서 크게 칭찬하거나 화내시는 일이 없었어요. 의장님은 어떤 사안에 대한 결론을 내리거나 본인 주장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경청’해야 공감이 형성되고, 공감하는데서 소통이 시작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 경청의 리더십을 몸소 보여 주신 분이었어요. 또 평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정리한 후 말씀하시는 스타일이었는데, 스스로 논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끊임없이 고민해서 생각을 정리하셨어요. 그래서 의장님의 논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그 대신 감성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건 좀 서툴렀어요. 농담을 못하셔서 별명이 ‘김진지’였거든요.”
김근태 의장은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해 부총재로 선임됐다. 오랫동안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민주정통세력이 집권하는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가 절실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듬해인 1996년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유 의원은 그의 후원회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다.
“의장님 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준비를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첫 경선을 며칠 앞두고 정치자금 관련 양심선언을 하셨어요. 정치개혁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던 시기라 누군가는 나서서 정치자금의 투명성에 대해 환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어요. 의장님은 평소의 신념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지만 세상은 발칵 뒤집혔지요. ‘너 혼자 깨끗하냐’,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못 산다’등 욕도 많이 먹고 비판도 많이 받으셨어요.”
인지 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김 의장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불구속기소함으로써 1년여의 긴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고, 회계책임자였던 유 의원은 그 시간을 재판준비로 보냈다. “결국 사건은 선고유예로 매듭지어졌어요. 그 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권위주의적인 정당문화나 정치자금과 관련된 문제를 투명하게 바꾸고, 법으로 제도화하는 등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지켜보면서 ‘의장님이 그 물꼬를 트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주주의와 따뜻한 시장경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유 의원은 민주주의와 따뜻한 시장경제, 한반도 평화를 ‘김근태 정신’이라고 소개했다.
“의장님은 민주주의와 인권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 밑바탕이 되는 것이 따뜻한 시장경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하는 따뜻한 시장경제로 양극화문제를 해결하고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로 가자는 것입니다. 시장만능주의, 경쟁의 논리만 있으면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합니다. 교육과 건강, 보육과 직업훈련 등 사회안전망을 통해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에게도 다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유 의원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20대 시절, 김근태 의장의 철학을 공유하면서 자신도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를 돕게 됐고, 일을 하다보니 어느 새 정당 활동에 더욱 깊이 관여하게 되어 당직을 맡고, 결국 국회의원까지 오게 됐다는 설명이다.
“제가 보아온 김근태 의장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이해관계나 이익을 위해 신념이나 철학, 소신을 뒤로 물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위치에서든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정책을 구상해 현실화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 오셨습니다. 그게 좌절되거나 포기하는, 혹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변함없는 신념과 일관성을 가지고 한 길을 걸어오신 분이
었습니다.”
“새해에는 거짓희망과 싸워 진정한 희망 찾을 것” 요즈음 민주당 을(乙)지로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 의원은 “을지로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너무 많은 서민들이 을의 위치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게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는 “의장님은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따뜻한 시장경제를 말씀하셨는데 요즘은 되레 그때보다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넘어 갑오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유은혜 의원에게 새해 희망은 무엇인지 물었다. “희망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희망
의 반대말이 절망이라고 알고 있는데 의장님은 희망의 반대말은 ‘거짓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용기에서 희망이 시작된다는 건데요. 거짓희망은 계속 뭔가 있는 것처럼 포장해 아직 거기에 희망이 있나 보다 하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지금 정부는 우리 경제가 회복되고 있고,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하면 경기가 살아나 낙수효과가 있을 것처럼 거짓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런 거짓희망과는 단호하게 싸워야 하고 그것이 희망을 찾는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유 의원은 거짓희망과 싸울 구체적인 방법으로 올해 치러질 지방선거를 꼽았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지방선거를 통해 올바른 일꾼을 뽑으면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정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여는 길로 연초부터 지방선거를 잘 준비해 풀뿌리민주주의를 통해 올바른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차분한 말투로 거짓희망과의 싸움을 다짐하는 유은혜 의원에게서 온화한 민주주의자의 단호한 결의가 느껴졌다. 그에게서 ‘참희망’을 보았다.

글_김현아 미디어담당관실 / 사진_임진완 미디어담당관실

신고
Posted by 김근태

눈물 흘리는 인재근 의원 (남양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인재근 민주당 의원(가운데)이 28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2주기 추모행사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2013.12.28 andphotodo@yna.co.kr

김근태 2주기 추모행사…文,安,孫은 불참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제2주기 추모 문화제가 28일 서울시청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이날 저녁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는 유족과 지인, 시민 등 5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철도파업 사태 등 각종 현안으로 '안녕하지 못한' 작금의 상황을 떠올리며 김 전 고문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김 선배는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이런 시기에 더욱 그리운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김 선배가 미처 다하지 못한 유업을 이어받는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수십 년 동안 김 선배 같은 많은 분이 고통과 희생을 통해 어렵사리 가꿔놓은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그가 꿈꾸던 민주주의로 가는 길,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간답게 사는 삶을 향해 가는 길,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가는 길,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이어서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족을 대표해 인사한 부인 인재근 의원은 "70, 80년대에도 감옥가고 고문당하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그런 역사를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도 우리가 이기는,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며 "김근태의 언어 '희망'을 잃지 않고 모두 열심히 싸워 2014년을 반드시 점령하자"라고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소속 의원 20여명과 정의당 심상정 김제남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과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함께 했다.

당초 이날 행사는 민주당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상임고문,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 야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기로 해 관심이 쏠렸지만 세 인사 모두 개인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문 의원과 손 고문은 대신 앞서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 묘역 참배에 함께했다.

안 의원은 공연장에 잠시 들러 인 의원에게 인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로 주변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아 행사장에 도착하지 못하고 이후 일정으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인 의원이 남편 사후에 치러진 지역구 보선에 출마했을 때 지지를 선언했던 각별한 인연이 있다.

김 전 고문 계보인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 출신인 유은혜 의원은 "오전부터 미사나 참배, 공연 일정이 있어 각자 일정에 맞게 오신 걸로 알고 있다"며 "이 행사는 지금 처한 현실에서 희망을 만드는 데 다시 용기 내고 연대의식을 갖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만든 자리"라고 말했다.

san@yna.co.kr

원문보기

신고
Posted by 김근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2주기를 맞아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사진전에서 부인 인재근 의원(민주당)이 고인의 몸짓을 흉내내고 있다. 추도미사와 추모식은 28일 오전 10시 서울 창동성당에서, 묘역 참배는 오후 1시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한다. 오후 6시에는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장사익·배해선·권해효·도종환 등이 참여하는 2주기 콘서트가 열린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원문보기

신고
Posted by 김근태

[김호기의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4)

민주주의, 영원한 미완의 기획 : 최장집과 김근태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입력 : 2013-11-03 22:33:15수정 : 2013-11-03 22:33:15

 

ㆍ민주주의에 목마른 이 땅에 ‘차가운 이론’과 ‘뜨거운 실천’ 선물

‘풍경’이란 말을 인문·사회과학에서 선구적으로 쓴 두 사람은 일본의 문예평론가 가라타니 고진과 인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다. 두 사람이 제시하는 풍경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가라타니에게 풍경(風景)이 근대적 ‘내적 인간’에 의해 발견된 인식의 틀을 뜻한다면, 아파두라이에게 풍경(scape)은 유동적이고 비규칙적인 현대사회의 다양한 양상을 의미한다. ‘사상의 풍경’이란 인간과 세계를 보는 인식틀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양상을 말한다.

최장집(왼쪽 사진)과 고 김근태(오른쪽)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빠뜨려서는 안되는 인물들이다. 최장집이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화 작업을 수행했다면 김근태는 치열한 삶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최장집, 성숙한 정당정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진보적 자유주의’ 주창
김근태, 재야 투사서 정치권 진출… 민주대연합론·한국적 사회협약 제시
세계화 파도 속 진로, 절차와 실질의 양립 모색은 민주주의 미완의 과제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상의 풍경에서 ‘사상들의 사상’은 단연 민주주의다.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기호들, 예를 들어 서구주의, 마르크스주의, 섹슈얼리티, 글로벌라이제이션 등 그 어떤 것들도 민주주의에 우선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운영 방법인 동시에 ‘타는 목마름’을 느끼게 하는 순정한 가치다.

민주주의(democracy)란 말은 고대 그리스에 기원한다. 국민(demos)과 지배(kratos)가 결합한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단수이자 복수로 존재한다. 국민의 지배라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단수이지만, 그 방법과 내용에 따라선 복수로 나타난다. 모든 국민이 정치적 결정에 권한을 직접 행사하는 게 참여민주주의라면, 선출된 대표들에게 정치적 결정을 위임하는 게 대의민주주의다. 이외에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 생태민주주의, 디지털민주주의, 글로벌민주주의 등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는 여러 식솔들을 거느리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라면 누구를 먼저 떠올리게 될까? 어떤 이들은 대통령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을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지식인 함석헌과 리영희, 김지하를 돌아볼 것이다. 나는 한 지식인과 한 정치가의 삶과 사상을 주목하고 싶다. 최장집과 김근태가 그들이다. 최장집이 ‘이론의 민주주의’를 대표한다면, 김근태는 ‘실천의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 최장집, 이론의 민주주의

최장집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 지식인을 평가하는 데는 학문적 연구와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두 기준이 존재한다. 사상가라면 여기에 미래에의 통찰을 더할 수 있다. 이 세 기준을 고려할 때 최장집은 백낙청과 함께 우리 시대 가장 주목할 사상가다. 한국 사회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을 만나 나를 포함한 범486세대 지식인을 소개할 경우 우리 세대는 ‘최장집의 아이들(children)’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최장집은 1943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와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고려대로 돌아와 가르치다 2008년 정년퇴임했다. 그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민주적 시장경제론’을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다.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생산적 균형을 강조한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해방 이후 가장 체계화된 중도진보의 대안론이었다.

최장집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준 책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다. 민주화 시대 이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단 한권의 사회과학 저작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해 왔다.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라는 부제를 단 이 저작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한 40년이 넘는 최장집의 고민과 성찰이 집약돼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성취한 학문적 기여는 세 가지다. 첫째, 한국 민주화를 분단국가 형성과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 속에 위치시켜 분석한다. 둘째, 정당정치의 미성숙과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지체를 한국 정치의 현주소로 진단한다. 셋째, 시민사회 균열이 제대로 반영된 정당정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한국 민주주의의 당면 과제로 제시한다. 성숙한 정당정치와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그의 일관된 계몽을 여전히 다수의 사회과학자들이 받아들이는 현실은 출간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갖는 현재적 가치를 웅변한다.

최근 최장집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창해 다시 한번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강한 국가·대기업에 맞서서 자율적 결사체의 강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국가·시장의 관료화에 맞서는 정당과 이들 간의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주의를 강조한다. 이 자유주의가 사회 양극화를 강화해온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과도한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진보적 지향을 갖는 게 ‘진보적’ 자유주의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변화된 현실을 적극 고려한 민주적 시장경제론의 2.0 버전이다. 정당정치의 중심성을 강조하고 경제민주화 프로그램을 구체화하며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중도진보의 새로운 미래비전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정당정치의 정상화가 시민정치의 도전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는 중대한 과제다.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는 상호 보완의 대등한 관계로 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 김근태, 실천의 민주주의

김근태의 저서 <희망의 근거>

사상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이론적 탐구는 물론 실천적 운동을 통해 더욱 풍요로워진다. 예를 들어, 전후 미국 민주주의 발전에 존 롤스 못지않게 기여한 이는 마르틴 루터 킹이며, 전후 독일 민주주의 발전에 위르겐 하버마스 못지않게 기여한 이는 빌리 브란트다. 한국 사회에서 운동으로 시작했으되 정치로 나아갔던 민주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 이는 김근태일 것이다.김근태는 1947년 경기 부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1970년대에는 노동운동가, 민주화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 그는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과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을 주도적으로 결성해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감과 석방을 반복했다.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수차례에 걸쳐 당했던 물고문과 전기고문은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비극적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재야’로 불리던 김근태는 1995년 정치권에 진출해 1996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후보를 사퇴했다.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을 맡는 등 진보개혁 정치의 한 중심을 이뤘던 그는 2011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희망의 근거>는 1995년 그가 재야에서 정치권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표한 책이다. 그의 일관된 문제의식은 ‘민주대연합론’이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성취하기 위해선 재야 사회운동 세력과 제도권 진보개혁 정당이 연대해야 한다는 게 그 핵심이다. 민주대연합론이 그 혼자만의 주장은 아니었지만, 김근태의 정치를 상징하는 논리였다. 최근까지도 ‘연합정치’ 또는 ‘야권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돼 왔듯이 민주대연합론이 진보개혁 세력에게 미친 영향은 심원했다.

김근태는 운동정치의 투사만이 아니었다. 2006년 그는 열린우리당을 이끌면서 ‘뉴딜’과 ‘잡딜(job deal)’을 제안했다. 이는 한국적 사회협약을 맺자는 발상이었다. 한국 사회의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실업, 노후 일자리 등을 위한 사회협약의 모색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격을 시장의 논리가 아닌 민주주의의 논리로 풀려는 그의 고뇌가 담겨 있었다.

2008년 총선에서 그는 낙선했다. 그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발표한 ‘2012년을 점령하라’는 글과 함께였다. ‘참여하는 자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의 지침이 됐다. 어떤 이들은 그를 지나치게 신중하고 우유부단한 햄릿형 정치가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운동과 정치의 최전선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했던 그는, 정치학자 정해구가 주장하듯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민주주의자 김근태’로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

■ 민주주의의 미래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국민의 지배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초시간적 가치이며, 현대적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모더니티의 프로젝트다. 민주주의가 갖는 이런 이중적 의미에 주목해 안과 밖의 시각에서 우리 민주주의에 부여된 두 과제를 제시하고 싶다.

밖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 민주화 모델로는 세계화의 충격과 진전을 완충하기 어렵다. 세계화가 우리 사회에 가하는 구조적 강제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넘어선 경쟁과 형평, 효율성과 공공성의 새로운 결합을 요구한다. 구체적으로 외국인 투자, 고용 없는 성장, 국경 없는 지구문화 등에 민주주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화라는 신념윤리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세계화의 책임윤리를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 민주주의가 안고 있다는 점이다.

안의 시각에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모두 새롭게 성찰해야 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담론에서 볼 수 있듯이 더 이상 유보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더불어, 절차적 민주주의 역시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최근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훼손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나아가,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단계적 개념이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 없이 절차적 민주주의 없다’는 사실은 한국 민주화 과정이 안겨준 중대한 교훈이다.

민주화 시대가 머지않아 종언을 고한다 하더라도 자유·정의·연대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영원한 미완의 기획이다. 최장집과 김근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다운 사회를 일생 내내 꿈꿔왔다. ‘민주주의를 점령하라.’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이 말이야말로 두 사람이 우리 세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문보기

신고
Posted by 김근태
이전버튼 1 2 3 4 5 6 7 ··· 15 이전버튼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