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김근태 재심 ‘백지구형’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4-05-01 21:54:53수정 : 2014-05-01 21:54:53

  

ㆍ“고문으로 받은 자백은 증거로 채택 안돼… 명복 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 경찰의 고문 끝에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던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재심이 오는 29일 선고된다. 검찰은 백지구형을 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김용빈 부장판사)는 1일 김 전 의원의 보안법·집시법 위반 혐의 사건 재심 재판을 마무리하고 오는 29일 선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후진술에 앞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김 전 의원이 경찰의 고문으로 받은 자백은 유죄증거로 사용되지 않았다”며 “당시 재판부는 경찰과 검찰에서의 진술조서를 제외한 증거만으로 유죄판결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무죄구형 대신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며 백지구형을 했다.

이날 최후진술은 김 전 의원의 부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61)이 대신했다. 인 의원은 “그토록 고통받고 억울한 상황임에도 김근태는 욕 대신 위로를, 절규가 아닌 호소를 했다”며 “다시 열리는 김근태 재판을 계기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재조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천년연합회 의장으로 전두환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 경찰에 연행돼 21일간 고문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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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근태 재심공판' 인재근 의원 "오랏줄 묶인 남편 떠올라"
등록 일시 [2014-04-03 17:16:38]

 

【서울=뉴시스】홍세희 천정인 기자 = "재심 공판을 보면서 (남편인) 김근태가 오랏줄에 묶여 앉아있던 28년 전의 재판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3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 심리로 열린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에 대한 재심공판에 출석한 인재근 의원은 재판을 마치고 나와 "늦었지만 진실을 밝힐 수 있게 돼 다행이다"며 소회를 밝혔다.

인 의원은 "당시 김 전 고문이 유죄 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했지만 (국회의원이라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다시 재판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며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너무 젊은 나이에 사망해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재심을 신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그동안 민주화 운동으로 고통받았던 가족들에게도 희망이되는 재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고문 측 변호인은 이날 공판 과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남아있는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라는 책 역시 이적표현물이 아니라는 감정결과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아울러 사망한 김 전 고문을 대신해 함께 민청련 활동을 했던 박모씨를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이 유죄 입증을 위해 적극적으로 다투지 않고 있고, 재판부의 판단만 남겨둔 상황"이라며 증인신문 대신 진술서를 제출토록 했다.

또 "김 전 고문이 소지하고 있었던 서적이 현재의 상황에서도 이적표현물로 인정돼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검찰 측에 유죄의 증거로 유지할 것인지 검토할 것을 권했다.

김 전 고문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5년 9월4일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분실에서 이적행위에 대한 자백을 강요받으며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으로부터 수 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결국 자백을 하게 된 김 전 고문은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확정받아 옥살이를 했다.

당시 고문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김 의원은 후유증을 겪다 파킨슨병을 얻게 됐고 2011년 12월 말 합병증이 진행되면서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다음 공판은 내달 1일 오전 11시10분에 열릴 예정이다.

hong1987@newsis.com
10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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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수감 교도소 공개된 날, 재심 첫 공판

부인 인재근 의원 "김근태가 재판받는 기분...고문 등 그냥 넘길 수 없어"

14.04.03 17:50 l 최종 업데이트 14.04.03 18:48 l 박소희(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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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포승줄을 한 채 밝은 미소를 짓는 김근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인재근 민주당 의원은 늘 그렇듯 '남편' 대신 '김근태 의장'이라고 불렀다.

"마치 김근태 의장이 빨간 오랏줄에 묶여서 그 자리(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것 같네요. 28년이나 지났지만 그때 재판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3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 심리로 고 김근태 민주당 의원의 국가보안법사건 재심 첫 공판이 열렸다. 김 의원은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회(민청련) 의장으로 활동하던 중 치안본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됐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등 수사관들은 구속영장 없이 그를 20여 일 동안 조사하며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이후 국보법 위반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 의원은 1986년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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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 놓인 고 김근태 의원 고문 조사실 입구 1985년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살인적인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받았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15호 조사실 앞에 조화가 놓여 있다(2012.1. 14.)
ⓒ 권우성

 

당시 수사관들이 그를 폭행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독직폭행 등)로 1993년 기소돼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재심이 열린 이유는 김근태 의원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 의원은 "숱한 세월 감옥생활을 하는 등 민주화운동과정에서 고난을 받았지만 국민이 자신을 선택해줬으니 구태여 이런 재판을 다시 할 필요가 없다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과거로 고통 받고 있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얻은 김 의원은 2011년 12월 64세로 세상을 떴다. 인재근 의원은 이듬해 10월 유족 자격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그는 3일 "(고문 등) 그 고난의 과정이 김 의장을 아주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게 한 원인"이라며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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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항거했던 고 김근태 전의원
ⓒ 김근태 추모 페이지 페이스북

검찰은 기존 재판에 제출한 자료 말고는 추가로 제출할 증거가 없으니 증거조사가 불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변호인들은 김 전 의장의 민청련 활동이 이적성을 띠었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부분 등도 확실하게 무죄로 판단 받을 수 있도록 증인 신문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양쪽 의견을 검토한 끝에 5월 1일 공판에서 추가 증거조사와 검사의 구형, 변호인의 최후변론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재심 첫 공판일은 김근태 의원과 그를 고문한 이근안씨 모두 수감생활을 한 서울 영등포교도소가 철거 전 마지막으로 내부를 공개하는 날이었다. 인재근 의원은 "(김 의원이) 그곳에 오래 있진 않았지만 잊을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 그는 "교도소가 아파트와 인접해 있어서 면회를 못한 때에는 아파트 담벼락에서 '김근태'라고 부르며 '늦어서 면회를 못간다'고 소리쳤다, 그럼 안에서 '알았다'고 대답했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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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민주, 고법 '김근태 재심' 환영…"진실은 가릴 수 없어"
기사등록 일시 [2014-03-17 11:41:33]

 

 

【서울=뉴시스】추인영 기자 = 민주당은 17일 서울고등법원의 '김근태 고문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에 대해 한목소리로 환영하며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 의혹을 비난했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말처럼 진실과 희망은 힘이 세다. 고문으로 죄를 조작해 누명을 씌울 수는 있지만 진실을 가리고 희망을 꺾을 수는 없다"며 "서울고법의 결정을 매우 환영한다"고 밝혔다.

인 의원은 "김근태는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을 증거로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이란 판결을 받았다. 모진 고문에 폐인이 된 몸으로 고된 옥살이를 했고, 그 바람에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며 "당시 법원의 판결은 법리적으로는 물론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재심 결정 시점이 절묘하다. 하늘에서도 간첩조작사건에 얼마나 분노했고 남 보기 부끄러웠으면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다시 돌아왔을까 싶다"며 "국가를 좀 먹고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거짓을 만들어 내는 국가기관"이라고 국정원을 비난했다.

그는 "만약 청와대가 국가기관의 거짓을 추상같이 심판할 기회를 놓친다면 머지않은 훗날 박근혜 정부는 거짓을 감싼 또 다른 거짓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최고위원 역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통해서 김근태 고문이 얼마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지 세상에 다시 드러나져야 한다"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환영했다.

iinyoung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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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 고 김근태 28년 만에 재심 결정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입력 : 2014-03-16 21:13:56수정 : 2014-03-16 21:13:56

 

ㆍ1985년 22일간 고문당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받아
ㆍ법원 “수사 참여한 경찰관들 유죄 확정… 고문 혐의 증명돼”


고 김근태 전 의원(사진)에게 평생 동안 고문후유증을 남긴 1985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고문을 통해 조작된 증거를 근거로 대법원이 김 전 의원에게 유죄 판결을 확정한 지 28년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2부(김용빈 부장판사)는 보안법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김 전 의원 사건의 재심을 개시한다고 16일 밝혔다. 2011년 12월 세상을 떠난 김 전 의원을 대신해 부인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2012년 10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김 전 의원은 1985년 9월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분실로 연행된 뒤 22일간 고문을 당했다. 경찰국 대공분실장이던 이근안씨의 주도로 대공수사 경찰관 4명은 김 전 의원에게 물고문과 전기고문, 전기봉고문 등을 가했다. 거듭된 폭행과 가혹행위 끝에 김 전 의원에게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시위의 배후이자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동조하는 단체를 구성한 죄가 씌워졌다. 대법원은 1986년 김 전 의원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6년을 확정했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을 고문한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외우고 발뒤꿈치에서 떨어져 나간 살점을 모았다. 고문당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의 변호사에게 살점딱지를 건네려 했으나 교도관에게 제지당해 실패했다. 고문의 참상을 알릴 기회는 극적으로 찾아왔다. 검찰청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재근 의원에게 고문사실을 알렸다. 인 의원은 가수 이미자의 노래테이프 중간에 고문사실을 녹음한 뒤 미주 한국일보 기자 심기섭씨를 통해 외국으로 내보냈다. 뉴욕타임스는 김 전 의원에게 가해진 고문사실을 대서특필했고 세계 인권단체가 전두환 정권을 압박하는 등 국제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김 전 의원과 인 의원은 고문사실을 세상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수상했다.

김 전 의원은 출소 후 민주화운동을 이어나갔고 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참여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고문후유증은 내내 그를 괴롭혔다. 특히 대공분실로 잡혀갔던 9월이 되면 매년 크게 앓았다. 결국 파킨슨병 발병으로 더욱 쇠약해졌고 2011년 세상을 떠났다.

법원은 재심을 개시한 이유로 “수사에 참여한 경찰관들이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을 고문한 경찰관들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독직폭행) 혐의로 1993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3년형을 선고받았다. 고문을 지휘한 이근안씨는 다른 공안사건에서도 많은 고문을 한 혐의를 받았고 12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1999년 10월 자수했다. 이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뒤 2006년 만기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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