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일주일이었습니다.

지난 한주동안 국민의 보건과 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지난 18일, 대구에서 네 살짜리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는 말과 굶어죽었다는 말이 함께 기사화 되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사람이 굶어죽을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죄책감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정민이와 청훈이 경철이 세 어린이가 엄마가 신문배달을 나간 사이에 화재로 숨져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 사건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다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경제대국을 꿈꾸는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국민적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나중에 ‘희귀질환을 앓고 있어 음식을 먹기 어려웠고, 그 결과로 영양실조가 되었다’는 보도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안전망이 이렇게 허망하게 뚫렸다’는 객관적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특히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를 많이 낳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의 생명조차 지켜내지 못했다는 참담함이 가슴을 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충격과 상처를 입은 국민들께 무슨 말로 사죄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멀리서 거친 파도가 쉴새없이 우리를 덮쳐오는 느낌입니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 익숙한 것들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날로 심화돼 가는 빈익빈부익부 사회 양극화 현상을 뒤로 제쳐두고도 과연 우리 사회가 계속 전진할 수 있을까? 근저에서 분열되어 있고 낯설어 하고 대립,갈등하는 구조를 갖고서도 우리 사회가 정말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러고도 시장경제가 훌륭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런 시장경제는 억압적인 시장이 아닐까? 이제는 정말 ‘사회통합’을 위해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건 아닐까?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혜택을 받고 참여하는 진정한 복지사회를 시급히 이뤄내야 하는 것 아닐까?

보건복지부에 부임한 이후 이런 고민을 계속해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새로 짜고, 우리 사회의 물길을 ‘사회통합’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밀고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사회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 새로운 발전으로 힘차게 밀고나갈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왔습니다.

지난 한주를 보내면서 자꾸만 쫒기는 느낌입니다. 제 마음이 점점 다급해지는 듯합니다. 결국 2005년 내년에 새로운 국민적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결단을 할 수 있는 새해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준수하게 생긴 그러나 외로워하는 장년 에이즈 환자

지난 화요일에는 에이즈 환자를 만났습니다. 12월 1일이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습니다. 축사도 하고 현황도 살펴봤지만 뭔가 찜찜했습니다. 에이즈 환자를 만나 직접 얘기를 듣고 위로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탁했습니다. 뒤에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도 받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긴장했습니다.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의사가 미리 말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손에 땀이 나는 듯했습니다. 악수를 하면서 마음을 들킬 것 같아 약간 초조해지기도 했습니다.

에이즈 환자를 만나고 나오면서 목이 말랐습니다. 자꾸 ‘소록도’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다시 ‘제2의 소록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에이즈를 ‘천형’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에이즈는 과거에 문둥병이라고 부르며 사회에서 격리하고 배척하던 ‘한센씨병’과 비슷한 처지로 규정받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만난 에이즈 환자는 정말 준수하게 생긴 남성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 역시 은연중 일그러진 모습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편견과 공포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나 TV에서 보던 말기 에이즈 환자를 떠올렸던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만난 그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회에 대한 증오심도 없었고, 자제력도 충분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오직 에이즈 환자들의 모임을 인정하고 지원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그렇고, 이미 치명적인 질병에서 만성적인 병으로 전환되고 있는 ‘에이즈’로부터 우리 사회를 효과적으로 지켜내기 위해서도 에이즈 환자에 대해 선의를 갖고 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이미 결심을 했기 때문에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 지켜나갈 생각입니다.


해군 방문 이야기

좀 가벼운 얘기를 하겠습니다. 수요일에는 동해에 있는 해군부대를 방문했습니다. 부대를 둘러보는 동안 군악대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연주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노래는 제가 지난 4.15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 도처에서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대에서 사전에 저의 18번에 대해 알아보고 ‘사랑으로’를 골랐다고 합니다.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제가 실수를 좀 했습니다. 첫 번째는 ‘국군장병 아저씨’였습니다.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어릴 때 위문편지를 쓰던 기분이 들어서 그랬는지 자꾸 그 말이 입안을 뱅뱅 돌면서 튀어나오려고 해 혼났습니다. 아들까지 군대를 갔다 온 제 처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는 장병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는 순간에 터져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화이팅!’을 하자고 했는데 실제로는 그만 ‘육군 파이팅!’이라고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육군 병장 출신이라서 그렇다고 하면서 ‘와’ 웃으면서 상황을 넘겼습니다. 다소 쑥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정겨운 느낌도 많았습니다. 우리 기술로 만든 자랑스러운 ‘광개토대왕함’을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끈 것은 옛날에 영화를 통해 봤던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습니다. 그때는 계단을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현장을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군복을 보니 그리웠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해군복 같은 디자인의 옷을 ‘세라복’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진명여고 학생들이 입고 다니던 세라복이 그렇게 예뻐 보였는데 그 세라복이 바로 해군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아주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세계화시대를 맞아 해군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합의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대륙에 연결된 섬’의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휴전선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해군은 우리의 물동량을 지키고 세계와 우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군 장병들에게 구호에 그치는 ‘세계속의 해군’이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대양 해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해군부대를 방문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육해공군의 경계를 넘어서 동아시아에서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할 것인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며 결국은 그것을 담보할 정치 전략은 무엇이고 그것을 실현시킬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등등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해군 부대 방문은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04.12.27
김근태
Posted by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