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편지쓰기를 시작하며―.

일요일 오후입니다.
며칠 전, 함께 일하는 후배로부터 ‘일요일에 쓰는 편지’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았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그저 부담 없이 짧게 쓰시면 됩니다” 그 후배는 정말 부담 없이 부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만 주눅이 들어버렸습니다.
‘정말, 쓸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번씩??’
하지만 후배의 눈동자를 외면할 수 없어 덜컥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 돌아섰지만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편지를 쓰겠다는 약속을 온전히 지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편하게 쓰겠습니다.
잘 정리된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일주일을 보내면서 품었던 ‘생각의 조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눈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일주일을 보내고 제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추억이건 감상이건 눈물이건 분노건….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여러분과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리워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작은 ‘말’ 하나도 틀림없이 책임져야하는 장관으로서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구실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늘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더없이 감사한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빚 갚는 심정’도 작용했습니다. 읽어주시고 제가 전하는 ‘생각조각’을 여러분이 ‘큰 생각’으로 키워 주셨으면 합니다.


울고 싶은 일이 많은 지난 한주였습니다.

먼저, 어이없는 화재로 세상을 떠난 세 남매 때문에 울었습니다. 경찰인 아빠는 철야근무를 나갔고, 엄마는 신문배달을 하던 그 새벽에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엄마, 아빠가 너무나 열심히 일하던 분들이라 슬픔이 더 큽니다. 특히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절규하던 그 어머니 때문에 가슴이 메어졌습니다. 정민이와 청훈이 경철이…. 세 친구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할을 해야겠다고 두 주먹 꼭 쥐고 다짐합니다. 제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여러분께서 절대 이 김근태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한 번 더 울었습니다.
노숙자들에게 밥 퍼주는 행사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특히 ‘신이 우리에게 두 팔을 주신 것은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보듬어 안기 위해서이다. 마음과 마음이 합쳐지면 기적을 이룬다’는 영상물이 나를 목메게 했습니다.

사실, 밥퍼 행사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12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봉사자들의 몸가짐과 마음 쓰는 모습이 성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다일공동체 봉사자들도 피하고 싶어 하던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친절한 공무원의 소임을 다한다는 이문행 경장님, 천사병원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들…. 그곳은 정말 너무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이었습니다.

“밥을 많이 퍼야 합니다”라는 말이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세상은 웰빙이니 비만이니 하는 말과 함께 밥을 조금 먹으려는 추세인데 그곳에서는 밥을 많이 퍼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밥을 많이 퍼서 식판에 높이 쌓아 배식 했더니 또 너무 많이 펐다고 혼이 났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낌이 많았습니다.

사실, 좋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몇 번하고 마는 밥퍼가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서 계속하는 밥퍼’라는 점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랑과 평화가 있는 이곳에 다시 오겠습니다-김근태” 이렇게 사인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언제 우리 모두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그곳에서 밥을 펐으면 좋겠습니다.

정치 얘기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뜬금없는 간첩논쟁에 대해서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잘 대응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용서하면 안 됩니다. 더 이상 이 땅에 냉전과 색깔논쟁의 망령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이런 야만이 준동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됩니다. 지난 봄 촛불로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구했듯이 언제나 나라와 민주주의를 구하는 것은 국민이었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모든 일이 잘 되리라 확신합니다.

지난주에는 의사당에서 단식하던 권영길 의원님을 위로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 나왔지만 가슴은 더없이 짠했습니다.

이런 이심전심이 여러분과 저를 연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요일에 보내는 편지’가 여러분과 제가 더 깊이 이심전심을 나누는 ‘따뜻한 악수’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덜 춥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에 또 뵙겠습니다.

2004.12.15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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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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