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상연구소 창립심포지움 축사

먼저 여러분의 심포지움을 축하하기 전에, 여러분과 함께 묵념할 것을 제안합니다.

어제 용산에서 여섯 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분들의 명복을 빌었으면 좋겠습니다.

묵념

1. 용산이 상징하는 것은?

어제 발생한 사고는 경찰권력의 과잉진압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혹심한 탄압이 새롭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과거 독재정부는 정권을 비판하는 민주인사를 짓밟았다면, 지금 이명박 정부는 철지난 신자유주의를 위해 “법치”라는 이름으로 서민들을 죽음의 길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서민들이 이렇게 진압되고 쫓겨나는 것이 오늘 이른바 세계화 시대의 한국사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회안전망의 강화를 통한 사회통합·국민통합이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에 고통을 전담시키고 나서 그 다음에는 공안국가 기구인 검찰·경찰 그리고 국정원을 강화시키고, 치안대책에 의지함으로써 그만 “전두환 시대” 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2. 여러분, 여러분의 역할에 큰 기대를 갖습니다.

여러분을 뵈니 간절한 마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신뢰든 진보든 또 뭐든 이름이나 이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실천하는 사람에게 나옵니다. 연구소장인 이해영 교수님, 김성훈 총장님과 천정배 의원님, 어렵지만 손에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 모두의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단식의 추억

여러분을 이렇게 뵈니 2년 전 한미 FTA 반대 단식을 천정배·임종인 의원님과 따로, 또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한미 FTA 협상을 막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오늘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를 볼 때 우리가 옳았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짓누르고 있는 이 끔찍한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사회적 약자에 대한 처절한 배제가 저렇게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슬픔과 분노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4. 한미 FTA의 교훈

한미 FTA 협상 진행과정을 겪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우선 우리의 통상연구와 통상전략 수준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한미 FTA를 강행했던 행정부 쪽과 한국사회 주류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러나 한미 FTA에 반대한 우리들 역시 자신있게 대안 통상전략을 내놓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정말로 정직한 씽크탱크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두 번째로 한미 FTA 과정에서 드러난 참여정부의 비민주적 행태에 충격과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일원으로서 저도 책임추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때 한미 FTA의 근사한 장밋빛 미래를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정부의 무분별한 행태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오늘날 이토록 오만하게 서민과 중산층을 소외시키고 있는데도,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업보가 있어서 말입니다.

5. Trade and Democracy

미네르바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미네르바 사건의 본질은 우리 정치의 수준의 강부자들을 위한 “치안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제 거의 완성되었다. 내용적 민주주의가 문제다.’ 그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저도 말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경솔하지 않았나? 후회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잘못하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뒤로 후퇴할 판입니다. 이게 진짜 위기입니다.

이 금융위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잔소리 말고” 이명박 정부를 따라와라,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저지른 것도 아니고, 또 책임도 없다, 그런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 말 안 들으면 “법치”라는 이름으로 치안대책 차원에서 대처할 것이라고 국민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

통상 그 자체도 물론 중요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이명박 정부가 미국발 경제위기를 핑계로 노골적인 독재로 타락하는 것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통상과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국제통상 연구소가 성과를 내는만큼 우리 경제와 민주주의가 되살아날 것을 밈습니다. 희망을 겁니다. 기대합니다.


2009년 1월 21일
김근태
Posted by 김근태